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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배극인]현대차 日시장 재도전

입력 | 2022-01-27 03:00:00


몇 년 전 한 재일(在日) 한국인 사업가가 검은색 제네시스를 몰고 호텔에 나타났다. 일본인들이 처음 보는 엠블럼에 신기한 듯 “무슨 차냐”며 몰려들었다. 하지만 현대차라는 답에 흥미를 잃은 듯 이내 흩어졌다. 해외 어느 나라를 가든 마주치는 한국차지만 일본만큼은 여전히 불모지다. 한 번 쓰디쓴 실패를 맛본 현대차가 일본시장에 13년 만에 다시 진출한다고 한다.

▷현대차가 일본 시장에 처음 진출한 때는 2001년이었다. 한일문화 개방 이후 일본에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제1차 한류 붐이 불고, 2002월드컵축구 동시 개최를 앞두고 한일 관계에 훈풍이 불던 때다. 마침 같은 해에 일본 도요타자동차도 한국에 진출했다. 도요타는 고급 세단 렉서스 시리즈를 앞세워 단숨에 한국 수입차 시장을 장악했다. 2004년부터 3년 연속 수입차 시장 1위를 차지했다. 독일차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인 데다 ‘일본차는 잔고장이 없다’는 인식까지 퍼지며 승승장구했다.

▷현대차는 일본시장 진출 첫해 1000여 대를 팔아 한국에 진출한 도요타와 비슷한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남는 게 없었다. 쏘나타 그랜저 등 중형 모델을 앞세웠는데 마진은 낮고 마케팅 비용은 한국의 몇 배였다. 한국차를 한 수 아래로 보는 현지 인식도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현대차 판매량은 이듬해 2000대 이상으로 늘었으나 곧 정체됐고 2008년에는 501대로 쪼그라들었다. 결국 2009년 누적 판매량 1만5000대를 끝으로 철수했다. 연구개발 조직을 남겨 훗날을 도모했지만 도요타와 대비되는 씁쓸한 퇴장이었다.

▷자국 차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일본은 원래부터 ‘수입차의 무덤’으로 악명이 높다. 1980년대에는 일본차가 미국 시장을 잠식하는데 미국차는 일본 시장에서 죽을 쑤면서 미일 무역분쟁으로 번졌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수입차 비중이 한 자릿수를 넘지 못한다. 그나마 잘 팔리는 수입차는 독일차인데 한국과 달리 미니와 골프 등 해치백 스타일의 작은 차가 강세다. 도로 폭이 좁고 차고지 증명제로 좁은 집에 주차장을 만들어야 하니 크기를 따질 수밖에 없다. ‘양보다 질’로 승부해야 하는 시장이다.

▷일본 시장에 재진출하는 현대차가 이번에는 전기차 아이오닉5와 넥쏘를 앞세운다고 한다. 승산은 있다. 일본 기업들은 그동안 하이브리드 차량에 ‘올인’하면서 전기차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현대차의 브랜드 파워도 옛날의 현대차가 아니다. 지난해 자동차 본고장 유럽에서 BMW, 다임러, 도요타그룹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판매량 4위에 올랐다. K팝과 K드라마를 앞세운 2차 한류 붐으로 한국 제품에 대한 이미지도 달라졌다. 이번엔 제대로 준비해 결실을 볼 때다.



배극인 논설위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