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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크론 확진 폭증-구인난에 워싱턴 전철·버스 운행 지연 속출”

입력 | 2022-01-27 03:00:00

[글로벌 현장을 가다]



21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의 스프링힐 역 전광판에 ‘전철 지연 예상’이라는 안내 문구가 떠 있다. 플랫폼 역시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이 텅 비어 있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최근 미 전역에서 주요 대중교통이 지연 운행되고 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21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의 스프링힐 역을 찾았다. 워싱턴에 직장을 둔 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버지니아 북부와 워싱턴 도심을 잇는 전철인데도 지상 플랫폼에는 전철을 기다리는 이용객이 거의 없었다. 전광판에서는 연신 오렌지색 글씨의 안내문이 흘러 나왔다. ‘전철 지연 예상. 메트로 버스로 갈아타는 것을 고려하시오.’》




전철을 기다리던 조시 씨는 “벌써 10분을 기다렸는데 15분을 더 기다려야 열차가 온다니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예전엔 배차 간격이 5∼10분이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로는 20, 30분씩 기다리는 게 기본이라고 했다.

사실상 마비된 대중교통

워싱턴 메트로는 13일 “안전점검 등으로 앞으로 3개월간 전철 서비스 감축이 더 이어질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코로나19로 2020년부터 이용객이 대폭 줄어들자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메트로는 전철 운행을 줄였다. 이 기간 일부 열차에 안전 이상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정상 운행을 위해서는 700여 대 열차의 바퀴를 매일 일일이 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면서 상당수 직원은 확진 및 밀접 접촉으로 격리에 돌입했다. 이 와중에 역대급 구인난으로 신규 직원을 채용해 안전점검에 투입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메트로 측은 버스 이용을 권장하고 있지만 메트로 버스 역시 인력 부족으로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버스기사의 결근율이 크게 치솟았기 때문이다. 워싱턴 메트로 버스 측은 10일 “당분간 평일 버스 운행을 주말 수준으로 줄이겠다. 전철 등 다른 대체 수단을 이용하는 것을 고려해 달라”고 안내했다. 버스는 지하철을 타라고 권고하고, 지하철은 버스를 타라지만 시민들은 둘 다 탈 수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상당수 미 주요 도시 또한 코로나19에 따른 인력 부족으로 대중교통 체계가 사실상 마비됐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중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는 1400명의 메트로 버스 운전기사 중 150자리가 비어 있다. 마찬가지로 뉴욕, 로스앤젤레스, 필라델피아, 시애틀 등에서도 메트로 버스 기사의 10%가량이 공석이다.

이에 일부 지역에서는 보너스를 내걸고 신규 기사를 채용하거나 은퇴한 기사를 다시 채용하고 있다. 남부 텍사스주 휴스턴은 최근 신규 운전기사 채용에 4000달러(약 480만 원)의 보너스를 걸었다. 북서부 오리건주 포틀랜드 역시 버스기사의 초급을 시간당 4달러에서 21달러로 대폭 높였다. 여기에 2500달러(약 300만 원)의 보너스까지 추가로 내놨지만 여전히 기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임금 직군부터 구인난 도미노

코로나19로 인한 구인난은 대중교통뿐만 아니라 식당, 커피숍 등 서비스업과 제조업에도 악영향을 마치고 있다.

스타벅스는 지난해 말부터 미국 내 일부 지점의 영업을 임시 중단하거나 모바일 주문을 받지 않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직원이 부족한 지점이 늘었기 때문이다. 당초 직원들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지만 이 역시 20일 철회했다. 접종을 완료한 직원만 가려서 받을 형편이 못 되기 때문이다.

맥도날드는 영업시간을 10% 줄였다. 멕시칸 음식 프랜차이즈 치폴레 역시 일부 매장 영업을 임시 중단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음식점에서만 92만 명의 직원이 일을 그만뒀다. 2020년 11월(56만 명)보다 약 65% 늘었다. 음식점 등 레저업의 시간당 임금은 평균 19.2달러로 모든 직업군 중 가장 낮았다.

교통(27.2달러), 식품 등 비내구재 제조업(27.6달러) 등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교통 분야 퇴직자 또한 전년 동월 대비 30% 증가한 18만 명이었다. 같은 기간 제조업 퇴직자 또한 25% 늘어난 29만3000명을 기록했다.

대(大)사직 시대

21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도심의 패러것 역 앞에 ‘메트로는 채용 중’이라는 구인 간판이 세워져 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정보기술(IT), 금융 등 고임금 직종과 달리 저임금 직종의 퇴직이 더 급증한 이유는 코로나19 이후 미국에서 불고 있는 대사직, 즉 자발적으로 회사를 나오는 노동자가 급증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전대미문의 전염병 대유행으로 일과 생활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됐다. 경기 부양을 위해 풀린 막대한 보조금으로 어느 정도 생계도 보장되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움츠러들었던 경제가 회복되면서 일자리를 찾는 수요도 늘어났다. 그러니 굳이 힘들고 어려운데 돈까지 적게 받는 일에 매달릴 필요가 없는 셈이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에만 자발적으로 사직한 노동자가 452만7000명에 이른다. 지난해 10월(420만 명)에 이어 두 달 연속 400만 명 이상이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690만 명이 실업 상태인데 노동자를 찾는 일자리는 1060만 개에 달하는 등 일자리 수급 불균형 또한 상당하다. 전문가들은 임금 수준이 낮은 직종에서부터 시작된 구인난의 파장이 곧 고임금 직종으로도 번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구인난 해결 위한 이민 확대론도

구인난 도미노 현상으로 공급망 교란 위기 또한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23일 WP에 따르면 서부 애리조나주의 10개 식품 가공공장에서 직원 공백으로 생산에 극심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북동부 매사추세츠에서도 직원들이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결근해 생선 가공식품 출하가 지연되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가 정점을 찍고 줄어들더라도 다른 변이가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일부 감염자는 완치 후에도 코로나19 후유증을 겪고 있어 인력 부족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경제활동인구(15∼64세) 2억300만 명 중 코로나19에 감염됐던 이들은 1억300만 명이다. 약 3분의 1인 3100만 명이 코로나19 증세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밝힌 장기 환자였다.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현재 매일 평균적으로 160만 명이 코로나19 증상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일 것으로 추산했다.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서는 사태 해결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크게 줄인 이민자 유입을 다시 늘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수전 클라크 미 상공회의소 회장은 11일 “우리는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민은 트럭운전사 부족 등을 포함한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고 물가 상승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촉구했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