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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군사·정보 당국에서는 러시아의 국경 병력 증강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수준인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도 동유럽 병력을 증강하며 대립이 ‘강대 강’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BBC는 26일(현지시간) 영국 국방장관과 서방 당국자들을 인용, 우크라 사태를 바라보는 유럽 외교안보가의 시선을 전했다. 낙관할 수 없지만, 아직은 ‘외교 카드’가 살아 있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벤 윌리스 영국 국방장관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막을 기회가 아직 남아 있지만, 낙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윌리스 장관은 곧 러시아를 방문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만날 예정이다. 우크라 사태가 주요 의제가 될 예정이지만, 외교적 돌파구가 열릴 것이란 기대는 크지 않다고 그는 보고 있다.
러시아의 완강함도 문제지만, 유사시를 대비한 유럽의 단일대오가 좀처럼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의 우려다.
윌리스 장관은 현재 유럽 다수 국가를 방문하며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지만, 우크라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과 대응 준비에 관해서는 국가별 이견이 있다.
영국은 지난주 우크라이나에 경전차 2000대와 현지군을 훈련시킬 부대를 보냈다. 물론 이런 지원은 나토 차원으로, 영국 역시 우크라이나에 전투부대를 직접 파병할 계획은 없다고 보리스 존슨 총리는 밝힌 바 있다.
윌리스 장관의 첫 방문지인 네덜란드에서도 방탄복과 저격용 소총을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장관은 전했다.
독일은 ‘치명적 무기’ 지원엔 소극적이다. 크리스티네 람브레츠트 독일 국방장관은 윌리스 장관과의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면 갈등이 고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신 독일은 야전병원과 군용 헬멧 5000개 등 치명적 무기가 아닌 물자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새 정부는 ‘역사적 경험’ 때문에 자국의 치명 무기를 전장에 보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데, 독일 내부에서도 다소 논란이 되고 있다.
미·유럽은 노드스트림2가 러시아와의 협상 및 대러제재 패키지에서 힘 있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보는데, 가스 운반길이 막히면 자국 사용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독일 역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게 독일의 ‘딜레마’다.
독일 외에도 크로아티아에선 조란 밀라노비치 대통령이 유사시 나토에 파견된 자국 군사들마저 귀국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혀 논란이 됐다. 이번 우크라 사태는 러·우간 갈등이 아닌, 미국 내 매파가 촉발해 빚어졌다는 게 밀라노비치 대통령의 주장이다.
◇러 국경 병력 증강, 2차 세계대전 후 최대 수준
러시아 국방부가 최근 공개한 우크라이나 국경 군사 훈련 영상.(러시아 국방부 홈페이지 갈무리)
러시아가 동부에 있는 군 병력까지 서부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지대로 이동시킨 건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번이 처음이라고 BBC는 전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국경 지역에 10만 명 이상의 병력과 탱크, 대포, 미사일을 배치한 것으로 서방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 북부와 국경을 접한 벨라루스에도 러시아군 3만 명이 주둔하고 있다. 내달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한다는 계획인데, 우크라이나로선 2014년 점령된 남부 크림반도와 동부 국경을 비롯해 3면에서 침공 위협을 받는 셈이다.
다만 서방 한 고위 정보 당국자는 BBC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고 점령하려면 지금 병력의 두 배가 필요할 수 있다”고 전했다.
◇나토, 억지 위해 병력 증강 ‘맞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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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폴란드와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 지역에 군함과 전투기를 추가로 보내고 병력을 증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도 군 8500명을 동유럽에 파병하겠다고 밝혔고, 프랑스와 스페인 등도 동유럽 병력 증강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이런 병력이 우크라이나에 직접 배치되는 건 아니지만, 동유럽을 에워싸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을 억제한다는 게 나토의 전략이다.
아울러 스톨텐베르그 총장은 “영국이 육해공 병력을 증강해 나토 회원국을 고무, 러시아의 침공을 억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윌리스 장관은 전했다.
이에 영국은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무기를 증량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다고 윌리스 장관은 덧붙였다.
이처럼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서방 간 ‘강대 강’ 전개가 펼쳐지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충돌을 막기 위한 외교전도 치열하다.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는 2014년 크림반도 사태 이후 우크라 동부 지역 분쟁 해소를 위해 맺은 ‘민스크 협정’ 당사국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독일, 프랑스 4개국 정치 고문 간 회담이 열렸다. 8시간여의 마라톤 회담 끝에 결국 동부 휴전을 유지한다는 공동 성명이 발표됐고, 2주 뒤 독일 베를린에서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아울러 지난 21일 이뤄진 러시아의 안전보장 요구 관련 미·러 외교장관급 회담(2차 협상) 결과로, 미국은 약속한 서면 답변을 러시아에 발신했다고 밝혔다. 나토에서도 별도의 제안서를 러시아에 전달했다.
러시아는 미국 측의 서면 답변 내용을 검토한 뒤 추가 대화와 외교 등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4개국 회담과 맞물려 향후 2주간이 우크라 사태 해결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