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뉴시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판사 14명 중 유일하게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전직 판사 2명에게 2심에서도 일부 유죄 판단이 유지됐다.
27일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최수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에게 벌금 1500만 원,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지난해 3월 1심에서 이 전 실장과 이 전 상임위원에게 각각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형이 선고된 것에 비해 형량이 줄어든 것이다.
재판부는 1심에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는 특정 사건 재판사무의 핵심영역에 대한 지적 권한이 있다”는 법리로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부분은 무죄로 뒤집었다. 재판부는 “재판권과 사법행정에 관한 법령, 제도를 종합적이고 실질적으로 살펴봐도 지적 권한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지적권한이 인정될 경우 재판권에 대한 사법행정권의 상시적인 감시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전 실장과 이 전 상임위원이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를 위한 대응방안 검토를 지시하고 중복가입 해소조치를 시행한 혐의에 대해선 1심보다 더 엄한 판단을 내렸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이들이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을 특정 법관에게 지시함으로써 직권을 남용했지만, 그로 인해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탈퇴한 101명의 법관들까지 직권남용의 피해자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에 따라 중복가입법관으로 하여금 소속 연구회를 탈퇴하게 한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면서 “중복가입금지조항은 법관의 학술적 결사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규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어 법관들이 이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전 상임위원에 대해 “사법의 독립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를 했다”며 “재판에 개입하는 행위로 불법성이 무겁다”고 지적했다. 이 전 실장에 대해선 “법관들을 상대로 연구모임 지원 업무에 관한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고 이로 인해 학문적 결사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했다.
이날 함께 재판을 받은 방창현 부장판사와 심상철 부장판사에게는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이 2018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한 뒤 기소한 전·현직 판사 중 유죄가 선고된 것은 이 전 실장과 이 전 상임위원 2명뿐이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