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5년 만에 열리다보니 다들 잊은 모양이다. 5년 전 대선주자 5명이 전부 참가한 TV토론이 얼마나 중구난방이었는지. 오죽하면 2017년 4월 14일 동아일보 1면 제목이 ‘5명 뒤엉켜 난타전’이고 부제목이 ‘양자 끝장토론 필요성 제기돼’였겠나.
2012년 TV토론도 여당 박근혜, 야당 문재인, 그리고 지금은 해산된 통진당 이정희까지 달랑 3명이 나왔음에도 전혀 알차지 못했다. 이정희는 주제가 바뀔 때마다 첫마디로 박근혜를 공격하며 토론을 방해했다. “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출마했다”는 전설적 어록까지 남겼다.
다음날 동아일보 사설 제목이 ‘겉핥기… 동문서답… 한계 드러낸 3자토론’이다. 새누리당은 1차 TV토론 뒤 TV토론 참가자격을 지지율 15% 이상인 후보자로 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미국의 기준도 그렇다. 그래서 양자토론이 이뤄진다. 당시 이정희의 지지율은 0.6%였다.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순서는 국회 의석순. 동아일보DB
● 우리가 보고 싶은 건 양자토론이다
법원이 26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간 양자 TV토론을 열면 안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지상파 3사를 상대로 각각 낸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 거다. 국민의당과 정의당 관계자들이 양자TV토론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대선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공식 TV토론을 3번 개최하게 돼 있다. 초청 자격은 소속 의원이 5석 이상인 정당의 후보, 지난 대선이나 총선에서 3% 이상 득표한 정당의 후보, 선거 기간 개시일 30일 전 여론조사에서 5% 이상의 지지율을 얻은 후보자다.
하지만 이번에 양당이 추진했던 양자토론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의 공식 TV토론이 아니었다. 공직선거법 제82조는 언론기관이 초청할 경우 양자가 합의만 하면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고, 보도할 수 있음을 명시해 놨다. 공정보도만 하면, 법적으로 모든 언론기관이 대선일까지 횟수 제한 없이 양자 끝장토론을 자유롭게 개최할 수 있다. 그걸 안철수, 심상정이 못하게 막은 것이다. 이번에!!
● 미안하지만 심상정 이번엔 아니다
생각해보시라. 유권자는 설 전에, 적어도 설 연휴에 이재명-윤석열, 또는 윤석열-이재명이 대선 공약을 놓고 치열하게 겨루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애초에 양자토론을 하자고 했던 것도 이재명의 제안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뉴스핌이 여론조사 기관 코리아정보리서치에 의뢰해 23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심상정 지지율은 허경영(5.6%)보다 낮은 3.1%였다(윤석열 42.4%, 이재명 35.6%, 안철수 8.8%). 당선가능성이 있다고 전혀 볼 수 없다.
게다가 심상정의 포부는 2017년 대선에서도 들었다. 2012년엔 심지어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 스스로 사퇴했다. “야권 대표주자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정권교체의 열망을 모아내자”며. 그래놓고 이번엔 양자토론을 듣고 싶은 유권자 열망을 막는단 말인가?
2017년 대선후보 TV토론(위)과 2012년 토론. 동아일보DB
● 유권자 중심으로 양자토론을!
법원은 ‘방송국 재량의 한계를 일탈했다’고 판단했지만 TV토론까지 간섭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모르겠다. 다수 후보자가 참여하는 TV토론이 벌어졌기에 내용도, 토론형식도 기계적 공정성과 형평성 유지에 초점이 맞춰졌고, 토론이 실질적 논쟁이 되지 못했다는 한계점이 지적됐으며, 참여기준도 군소 후보자의 형평성 논란에서 시작해 지지율이 낮은 후보와 당선권에 있는 후보가 같은 수준에서 참여시키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타당하느냐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게 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에서 나온 얘기다(논문을 옮겼기에 이렇게 딱딱하답니다).미국은 선거방송토론 관련 법 규정이 없다. 1988년부터 비영리 민간법인인 대통령토론위원회(Commission on the Presidential Debates·CPD)가 주관해 토론 초청 후보자 기준으로 15% 이상 지지율 규정을 만들었을 뿐이다. 제3당 후보를 배제한다는 비판이 있으나 이젠 관행이어서 그러려니 한다.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방송국 관계자들이 조 바이든,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선후보의 TV 토론을 위한 장식을 설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2015년 선거방송토론위는 ‘유권자 중심의 TV토론 법·제도 연구’ 연구용역을 맡긴 바 있다. 정당이나 후보자 아닌 ‘유권자’를 중심으로 본다면, 답은 분명하다. 유권자는 적어도 지지율 15%이상 되는 후보자 간의 양자토론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것도 빡쎈 토론을!
여럿이 나오는 공식 TV토론은 3회가 기다리고 있다. 안철수, 심상정은 그때 참가하면 된다. 이번엔 제발 참으시기 바란다. 유권자는 양자토론도 볼 권리가 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