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아트로드]빛과 철의 도시 포항
경북 포항 환호공원에 지난해 11월 설치된 체험형 아트시설 ’스페이스 워크’. 롤러코스터 레일 위를 걸으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포항 영일만의 바다와 포스코 전경을 구경할 수 있다.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이를 사랑하는 동네 경찰로 나오는 주인공 강하늘은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 그래서 흰 구름과 코발트색이 어우러진 바닷가 풍경이 충청도 서해안 어디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경북 포항시 구룡포항이었다.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도 빨간색, 흰색 등대가 예쁜 항구가 등장한다. 경제 개발을 이끌어 온 포스코의 제철산업 단지로만 알고 있던 포항에 이렇게 한적하고 아름다운 갯마을 풍경이 그대로 살아 있다니….
포항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를 닮은 지형 때문에 임인년 새해 일출맞이로 더욱 각광받는 곳이기도 하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된 로맨틱 드라마의 촬영지이자, 포스코가 만든 아트 체험시설로 연인들의 ‘핫플레이스’ 여행지로 떠오른 포항을 찾았다.
● 영일만 뷰 맛집 ‘스페이스 워크’
포항 시내 영일만에서 북쪽으로 차로 10여 분 거리의 환호공원.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포스코 야경과 바다 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이곳에 들어선 ‘스페이스 워크(Space Walk)’는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무중력 상태의 우주를 유영하는 듯, 롤러코스터 레일 위를 걸어 다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체험형 아트시설 작품이다. 개장한 지 두 달이 채 안 돼 11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았을 정도로 포항에서 가장 ‘핫’한 곳이다.
환호공원 언덕에서 만난 ‘스페이스 워크’의 첫인상은 하늘 위에 멋지게 휘갈겨 쓴 사인(sign)처럼 보였다. 각도에 따라 하트, 오메가 모양으로 끊임없이 변신하는데, 에어쇼에서 곡예비행의 구름처럼 자유로운 곡선의 향연을 펼친다. 롤러코스터의 레일 위를 걸을 때는 포항의 거센 바닷바람에 철제 구조물이 살짝 흔들린다. 아찔함을 느끼며 난간을 꼭 잡는다. 추운 날씨에 장갑은 필수다. 포스코에 따르면 동시 수용 인원은 최대 150명. 순간 풍속은 초당 80m까지 끄떡없고, 약 6.4∼6.5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포스코의 집약된 기술로 붕괴되지 않는 구조라고 하니, 난간을 꼭 잡고 한 계단 또 한 계단 오른다.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다. 순간 고개를 들어 보니 탁 트인 전망! 포항의 푸른 바다, 은빛으로 부서지는 영일만의 파도, 포항제철소 굴뚝의 하얀 연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밤에는 UFO 우주선이 내려온 듯한 환상적인 야경을 자랑한다.
● 동백꽃 피는 갯마을 차차차
‘갯마을 차차차’ 촬영지였던 청하면 청하시장 내 청호철물점.
조용했던 어촌마을인 포항의 북구 청하리는 ‘갯마을 차차자’를 본 국내외 팬들이 심심찮게 찾아온다. 청하 오일장에는 드라마에 나오는 공진반점, 보라수퍼, 청호철물점, 오윤카페가 있고, 사방기념공원 정상에 놓여 있는 두식의 고깃배, 활공장이 있는 흥해읍 곤륜산, 구룡포읍 석병리 빨간등대 등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남자 주인공인 홍두식이 서핑을 한 월포해수욕장은 승용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포항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에 있는 까멜리아 커피숍.(왼쪽 사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포스터.
‘일본인 가옥거리’는 1923년 일제강점기 시절 동해 최대의 어업 전진기지였던 구룡포항이 생기면서 일본인이 몰려들어서 형성된 거리였다. ‘까멜리아’도 일본식 가옥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드라마 속에서는 두루치기 전문 식당이자 술집이었지만 지금은 커피숍으로 운영 중이다. 커피를 시켜서 ‘동백빵’(치즈맛, 고구마맛)과 함께 먹으면 좋다. 까멜리아 안에는 동백서점, 동백오락실 등 드라마 속에 등장했던 배경까지 재현해 놓았다. 들어오는 손님마다 “안녕하세요 동백 씨, 용식 씨∼” 하는 사장님의 인사가 낯설면서도 정겨운 느낌을 준다.
● 호미곶 해돋이와 구룡소 산책
포항은 빛과 철의 도시다. ‘영일(迎日)’이란 이름처럼 해돋이로 유명한 명소다. 그중에서도 호미곶은 대한민국 본토 최동단으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곳이다. 호미곶(虎尾串)은 조선 중기 풍수가 남사고(南師古·1509∼1571)가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이며, 백두산은 코, 호미곶은 꼬리에 해당하는 명당’이라 설명한 후 호랑이 꼬리로 불렸다. 임인년 검은 호랑이 해가 시작되는 설을 앞두고 호미곶 해돋이 광장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바닷속에 설치된 조각 작품 ‘상생의 손’을 마치 내 손인 것처럼 각도를 조절해 사진을 찍는 것도 여행의 즐거운 추억이 된다.
이가리 닻 전망대
포항=글·사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