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안전지능 만드는 ‘세이프틱스’ 협동로봇 동작 따른 부위별 위험도… 실시간 시뮬레이션 기술 첫 개발 글로벌 로봇기업들 “기술력 탁월”… 국내 대기업 로봇 안전성도 평가 세계 협동로봇 시장 2026년 9조원… 안전의식 높아져 수요 급증 전망
세이프틱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시뮬레이션 기술로 실시간으로 협동 로봇의 위험도를 분석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기계부품 조립공정에 사용된 협동 로봇(위쪽 사진)에 대한 충돌안전평가 및 최대안전속도 제안을 위한 시뮬레이션 결과물(아래쪽 사진). 빨간색 부분은 국제표준화기구(ISO)의 기준을 넘어선 것으로 속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안전한 파란색 구간에서는 속도를 높여서 전체적인 생산속도를 평가 전보다 더 높일 수도 있다. 세이프틱스 제공
로봇이 만들어 주는 아이스크림은 로봇이 우리 곁에 다가왔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상품이다. 사람 팔을 빼닮은 로봇이 컵을 붙잡고 요리조리 움직이며 손가락 굵기로 배출되는 아이스크림을 모양새 있게 담아낸다. 로봇이 다 담은 아이스크림을 지정된 장소에 내려놓으면 곁에 있던 관리자가 손님에게 건네준다.
어떤 일을 사람과 협동해 처리하는 이런 로봇은 협동 로봇(Collaborative Robot·코봇)으로 불린다. 덴마크 기업 유니버설로봇이 2009년 협동 로봇을 선보였고, 국내에서는 두산로보틱스와 현대중공업, 한화정밀기계 등이 만들고 있다. 대당 3000만 원가량 한다. 일상보다는 제조공정에 투입돼 더 활발하게 쓰인다. 로봇팔의 끝에 드라이버를 달아 나사를 조이거나 풀 수 있고, 널따란 철판을 매끄럽게 만드는 연마작업을 사람들 틈에서 할 수 있다. 힘이 세고 지치지도 않아 무거운 물건을 자주 들어 옮겨야 하는 물류 현장에서도 많이 쓰인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하는 반복적인 수작업을 간단한 프로그래밍만으로 거의 대부분 대신할 수 있다. 치킨을 튀기는 로봇이나 칵테일 혹은 커피를 만들어 주는 로봇이 잇달아 나오는 것도 사용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올해 초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는 로봇이 각광을 받았다. 로봇업계는 머지않아 협동 로봇의 전성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올해 1월 초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에는 여느 해보다 많은 로봇들이 출품됐다. 두산그룹은 전시관에 두산로보틱스의 협동 로봇이 사람과 함께 드럼을 연주하는 모습을 연출해 관람객의 이목을 끌었다. 두산그룹 제공
○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
협동 로봇은 산업용 로봇에 비해 설치가 간편하다. 반나절이면 설치 후 사용이 가능할 정도다. 가전제품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하는 점이 가전제품과 구별되는 점이다. 사람 바로 곁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충돌에 의한 안전사고를 염두에 둬야 한다. 협동 로봇은 사람과 충돌하면 저절로 멈추도록 만들어져 출시되지만 이는 기본적인 요건일 뿐이다. 협동 로봇은 사용자의 프로그램에 따라 다양한 도구를 이용하고, 여러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런 작업별로 별도의 안전인증을 받아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그렇게 규정돼 있다. 로봇의 손에 압착고무판이나 솜뭉치가 끼워진 경우와 드라이버나 송곳이 달린 경우는 그 위험도가 천양지차다. 로봇만 구매해서 바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작업별로 안전도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 세이프틱스는 무엇을 만드나
브라운바나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받아내는 협동 로봇. 세이프틱스는 이 작업을 하는 협동 로봇의 안전도 평가를 수행했다. 라운지랩 제공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협동 로봇 시장에서 작업별로 안전도 검사를 해야 한다는 점이 세이프틱스 신헌섭 대표이사(36)의 눈에 들어왔다. 경희대 기계공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구조설계 시뮬레이션을 하는 회사인 마이다스아이티에 다니고 있던 2019년 무렵이다. 신 대표는 “석·박사 과정에서 로봇의 충돌 안전과 관련 연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위험도 평가 시장을 눈여겨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듬해 1월 세이프틱스를 창업했다. 현재 박사 2명, 석사 5명을 포함해 총 12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세이프틱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협동 로봇 동작에 따른 부위별 위험도를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해서 보여주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손에 쥐어지는 도구와 작업 속도 등에 따라 안전할수록 파란색에 가깝게, 위험할수록 붉은색이 짙어지도록 보여준다. 같은 속도라 하더라도 드라이버를 쥐었을 때는 헝겊을 쥐고 움직일 때보다 더 위험하다고 표시되는 식이다. 해당 위험도가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정한 기준을 넘어서면 속도를 줄이도록 알려준다.
협동 로봇의 안전도 평가는 한국이 앞서 있다. 유럽과 일본 미국 등에서는 협동 로봇 안전도를 평가할 때 직접 부딪쳐 보는 물리적인 방식을 사용한다. 물리적인 시험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든다.
세이프틱스는 창업 한 달 만인 2020년 2월에 자사의 협동 로봇 안전 솔루션을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소개했다. 외국보다 앞선 시뮬레이션 기술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석·박사 과정 동안 관련 분야 연구와 실험을 계속해 온 덕분이었다. 신 대표는 “발표 이후 유니버설로봇과 ABB 등 글로봇 로봇기업들로부터 탁월한 솔루션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전했다. 지금은 유럽의 한 자동차회사 제조 공정에 쓰이는 협동 로봇의 안전도 평가도 진행하고 있다.
○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내나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협동 로봇의 안전지능을 개발하고 있는 세이프틱스 신헌섭 대표(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와 직원들. 세이프틱스는 올해 추가 투자(pre-A 단계)를 받고, 세계 시장 개척에 나설 계획이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온라인 평가사업은 협동 로봇 사용자가 로봇 팔의 동작 자료를 온라인 사이트에 올리면 위험도를 평가해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값을 제공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안전과 관련한 보고서도 자동으로 작성해 준다. 사용자는 이 보고서를 한국로봇산업진흥원에 제출해 안전인증을 받을 수 있다. 협동 로봇은 빌려서도 사용할 수 있는데, 대여업체들이 로봇 설치 작업을 하면서 이런 안전도 평가 업무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협동 로봇의 안전지능 SW는 로봇의 기능을 자주 바꿔 사용하는 사업장에 적합하다. 작업이 바뀔 때마다 안전도 평가를 일일이 할 필요가 없다. 세이프틱스가 AI를 활용해 만든 안전지능 SW가 로봇이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자동으로 제어한다.
세이프틱스는 독특한 기술을 기반으로 스타트업으로는 드물게 창업 1년 만에 매출(2021년 1억4000만 원) 실적을 올렸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과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이 세이프틱스의 안전지능 SW를 구매해 사용 중이다.
○ 얼마나 성장할 수 있나
협동 로봇 안전 관련 시장은 국내외 모두에서 세이프틱스가 개척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장 규모에 영향을 미칠 큰 변수는 협동 로봇의 판매량과 협동 로봇 안전에 대한 사회의 인식 등 두 가지다.
협동 로봇은 작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1500대, 세계적으로는 4만5000대가량이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시장조사기업 마케츠앤드마케츠에 따르면 세계 협동 로봇 시장은 2020년 9억8100만 달러(약 1조1000억 원)에서 2026년에는 79억7200만 달러(약 9조3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성장률이 41.8%에 달한다. 협동 로봇 안전지능 SW 시장도 비슷한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는 스마트팩토리 구축이 늘어나면서 협동 로봇을 설치하는 중소기업도 늘고 있다.
협동 로봇의 안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 낮은 편이다. 세이프틱스는 국내 협동 로봇 중 충돌 안전도 평가를 받고 사용 중인 로봇은 10대 중 3대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등의 시행으로 안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 이 비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국내 한 대기업 건설회사는 세이프틱스에 건설현장에서 쓰이는 이동식 로봇의 안전도 평가를 의뢰하기도 했다. 평가 결과, 로봇이 들어 올리는 건설자재의 무게 때문에 당초 예상했던 속도보다 낮춰서 운행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사전에 로봇에 대한 안정도 평가를 받아 두지 않으면 안전사고 발생 때 더 엄격한 처벌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 대표는 “앞으로 로봇과 사람의 물리적 접촉은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협동 로봇과 사람이 안전한 환경에서 최대의 생산성을 낼 수 있도록 로봇의 안전지능을 높이는 기술을 꾸준히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