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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전, 조용히 3억 원 비상금 만들자 생긴 일

입력 | 2022-01-31 10:37:00

문석근 “재테크 자신 없다면 매달 우량주 사서 모으세요”







‘아내 몰래 비상금 3억 모으기’ 저자 문석근 씨. [홍중식 기자]

남편에게 숨겨둔 비상금이 있었다. 그것도 꽤 많이! 아내라면 좋아할까, 싫어할까. ‘아내 몰래 비상금 3억 모으기’ 저자 문석근 씨(닉네임 ‘깍두기 교수’)는 “책을 준비하면서 만난 여성은 대부분 ‘남편이 퇴직 후 빈털터리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며 오히려 안심했다”고 말한다. 출판업계가 불황인데도 이 책은 누군가의 남편 또는 아내라면 뒤적여볼 법한 끌리는 제목과 진솔한 내용 덕에 출간 후 두 달 만에 3쇄를 찍었다.

농협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다 명예퇴직한 문 씨는 아내와 함께 은행에 가서 아내 명의 통장에 퇴직금 전액을 입금했다. “당신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내가 봉사한 부분도 퇴직금에 포함돼 있으니 퇴직금 나오면 반은 달라”던 아내도 전액을 다 주자 당황해했다고 한다. 문 씨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비상금을 틈틈이 마련한 덕분”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꽤 만족스러운 실업자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문 씨로부터 맘 편히 놀 수 있게 된 비결을 들었다.


아내 몰래 시작한 프로젝트
책 제목이 매력적인데, 쓴 계기가 궁금합니다.

“현직에 있을 때 은퇴한 선배들과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은퇴하면 여러 사람 눈치가 보이는데, 특히 가장 심한 사람이 집에 있는 아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회사 다닐 때 아내 몰래 비상금을 조금이라도 만들어둘걸 후회한다’고도 했어요.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은퇴 전에 준비해야겠다’ 싶어서 비상금 3억 계획을 세웠죠. 과거 저 같은 사람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재테크하는 노하우를 전해주고 싶었어요.”

한 직장에서 30년 가까이 일했으니 명예퇴직 때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일자리가 그 사람 권위를 나타내기도 하잖아요. 그게 사라지니 ‘멘붕’(멘털 붕괴)이 오더라고요. 저 나름 준비를 꽤 하고 은퇴했는데도 말입니다. 일단 월급날 들어오는 돈이 없으니 당황할 수밖에요. 수입은 끊겼는데 생활은 그대로라 지출이 줄지 않거든요. 적금이나 예금을 정리해도 보험은 정리할 수 없어 돈이 계속 나가고요. 경제적인 면을 떠나 당장 출근할 곳이 없으니 답답했어요. 그래도 금세 털어내고 은퇴 후 설렘을 즐길 수 있었던 건 비상금 덕이 컸다고 생각해요.”

책을 내면서 이제 더는 ‘아내 몰래 모은 돈’이 아니게 됐는데, 아내도 책을 읽었나요. 비상금이 있다고 했을 때 반응이 궁금해요.

“아내에게 ‘이번에 쓴 책’이라면서 보여줬더니 제목을 보고 깜짝 놀라더라고요. ‘당신, 3억이나 가지고 있냐’면서요. 좋아하는 눈치였어요(웃음). 남자에게 비상금은 자존심이에요. 그래도 아내 몰래 돈을 모은다고 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테니, 책을 쓰기 전 여러 여성 지인과 만나 얘기를 나눴어요. 그런데 다들 ‘내가 모르는 돈이어도 좋으니 갖고 있으면 좋겠다’ ‘책 언제 나오느냐, 나오면 사서 남편 책상에 올려두겠다’ 하는 걸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됐죠.”

비상금을 3억 원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 계획한 게 2007년 5월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3억 원이면 상당히 큰 액수였어요. 책을 쓰면서 1억 원은 적은 것 같고 5억 원은 ‘비상금’이라기에는 과한 것 같아서 3억 원으로 결정했어요.”

3억 원 모으는 데 걸린 시간과 방법을 알려주세요.

“2018년 12월 은퇴했으니 3억 원을 만드는 데 11년이 걸린 셈이네요. 주식이 60%, 연금저축이 25%, 보험이 15%였는데요. 많이들 보험 비중이 큰 걸 의아하게 여기더라고요. 제가 운전하다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그때 가족이 너무 걱정되더라고요. 그 후로는 연금 형태로 받을 수 있는 종신보험 상품에 꾸준히 돈을 넣고 있어요. 포트폴리오상 주식 비중이 크긴 하지만, 스스로 주식 전문가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우량주 중심으로 장기투자했고요. 현금을 보유하기보다 주로 마이너스통장을 투자에 활용해요.”


이제부터라도 시작하려면

문석근 씨는 투자에 자신이 없다면 매달 우량주를 적금 붓듯 사 모으라고 조언했다. [홍중식 기자]

우리 사회에서는 ‘마이너스통장’도 ‘비상금’만큼이나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어떻게 써야 현명하게 썼다고 할 수 있을까. 문 씨는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 과하게 소비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강한데, 나는 마이너스통장을 꼭 사고 싶은 주식이 있을 때만 활용했다”며 “주식이 오르면 팔아서 다시 마이너스통장에 채워넣는 식으로 썼다”고 말했다.

주식투자 당시 시드머니는 얼마였고, 어떤 원칙으로 어떤 곳에 투자했나요.

“당시에는 S전자, K자동차, H반도체, H자동차 등 누가 생각해도 우량주인 것 중심으로 수입이 생길 때마다 사 모았어요. 2010년 5월쯤 모으던 주식을 한꺼번에 처분했는데, 그때 정말 사고 싶은 주식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당시 K자동차의 경쟁사 H자동차 주식이 3만 원대였는데 13만 원까지 올랐거든요. 그런데 K자동차는 2만 원대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걸 보고 기회다 싶어 주식 판 돈을 K자동차 주식에 ‘몰빵’했죠. 그게 3600만~3700만 원 정도였는데 운 좋게 200% 넘게 수익을 냈어요. 그 외 여러 종목으로 30~50% 수익을 올린 덕에 시드머니 1억 원을 만들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시가총액 3위 이내 우량주에 투자하면 될까요.

“시장이 좋을 때는 아무거나 사도 다 오르는데, 지금이 딱 변곡점 같아요. 코로나19 사태로 안 좋았다가 또 좋아졌다가 다시 침체되는 느낌이 있죠. 시장이 어려울 때는 시가총액 3위 안에 드는 기업 주식을 사면 최소한 상장폐지 등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심적으로 안심되고, 실제로도 실패 확률이 적다는 게 장점이에요.”

지금부터라도 비상금 모으기를 시작하려는 직장인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주세요.

“재테크는 실천이 제일 중요해요. 연초에 계획을 세워도 연말이면 달라지듯, 재테크도 마찬가지예요. 주변에서 들리는 정보를 듣고 주식을 사서는 절대 안 돼요. 특히 처음 시작하면 돈을 불리려는 마음이 커서 실패하는데, 꾸준히 공부해야 합니다. 한 종목을 연구하기보다 경제 큰 흐름부터 잡고 가는 것을 추천해요. 요즘도 경제 신문을 꾸준히 챙겨 보고, 증권방송도 한 개씩 꼭 봅니다. 미국시장 이야기를 잘 보면 한국주식 흐름도 보여요.”

투자에 실패해 가지고 있던 비상금마저 날릴까 봐 걱정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그게 참 어려운 부분인데, 주식은 장기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신 없다면 매달 일정한 날을 정해 우량주를 사 모으세요. 우상향하는 주가지수를 믿고, 좋든 나쁘든 일정한 날에 적금 붓듯 사 모으다 보면 자산이 장기적으로 천천히 증가하는 방향으로 갈 테니까요.”


현명한 은퇴 준비법
현재 문 씨는 대한민국 농민의 행복을 바라며 농업인행복연구소를 운영하는 한편, 농협대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비상금은 책 제목에 쓴 것보다 많이 늘었다고. ‘공식적’으로 주식 3억 원, 연금저축 1억2000만 원, 보험 7000만 원 정도가 비상금이다. 그는 모치즈키 도시타카의 책 ‘보물지도’를 참고해 ‘깍두기 교수의 꿈의 지도’를 그림으로 그려 방 한쪽에 붙여놨다. 문 씨는 “퇴직 전 이루고 싶은 10가지 꿈의 지도를 그렸는데, 책 내고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꿈에 포함돼 있었다”면서 “대부분 이뤘지만, 은퇴 후 가족과 해외여행을 가려 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아직 못 가서 아쉽다”며 웃었다.

은퇴 순간이 다가오는 5060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대부분 은퇴가 당장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회사에 다니고, 은퇴하고 나서도 ‘나는 일을 많이 할 수 있겠지’라고 착각해요. 실제로 은퇴는 순식간이고, 그동안 많아 보이던 일도 다 도망가고 없어요. 멘붕 상태가 올 텐데, 그 전에 경제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목표를 높게 잡지는 않더라도 일단 재테크를 시작하세요.”

재테크 이상으로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요.

“은퇴하면 가장 큰 문제가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거예요. 회사에 안 가고 놀면 건강해질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은퇴 후 건강이 약화된 사람이 많더라고요.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노력하고, 시간 날 때마다 걸어요. 책 쓸 때도 집필 시간을 빼면 거의 종일 걸었어요. 요즘은 테니스를 열심히 치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경제적 자유를 이뤄 일찍 은퇴하려는 2030 ‘파이어족’도 많아졌어요.

“요즘 파이어족이 핫하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할 시기에 너무 급하게 성취하려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투자에 성공해 빨리 은퇴하는 이는 극히 일부고, 대부분 회사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거든요. 성공 사례만 보면서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급하면 묻지 마 투자를 하거나 오판을 하기 쉬우니, 길게 보고 멋진 은퇴를 준비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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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324호에 실렸습니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