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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호-II 대공포, 사우디 방산 협력 ‘잭팟’ 신호탄 쏜다

입력 | 2022-02-01 14:38:00

이란, 예멘 후티 반군 견제용… K2 전차, K9 자주포 수출도 기대




한화디펜스 비호-II 방공 시스템. [사진 제공 · 한화디펜스]

1월 7일 국제 방위산업 전문매체 ‘택티컬 리포트’가 흥미로운 보고서를 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방산업체 SAMI(Saudi Arabia Military Industries)가 한국 한화그룹과 합작투자회사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것이다. 사우디는 해당 합작 기업을 통해 한화디펜스 비호-II 방공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호-II가 사우디로 수출될 수 있다는 보도는 2019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그 후 2년 가까이 별다른 소식이 없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사우디를 둘러싼 안보 상황이 급변하고, 사우디 왕실 정책도 변화하면서 한국의 대(對)사우디 방산 협력 ‘잭팟’에 청신호가 켜졌다.

후티 반군의 정유시설 드론 공격

사우디가 최근 비호-II 도입에 관심을 보이는 배경은 무엇일까. 최근 사우디는 예멘 후티 반군과 교전하고 있다. 2015년 시작된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는 정부군을, 이란은 후티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 같은 이슬람 국가이나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와 대표적인 시아파 국가 이란은 앙숙이다. 후티 반군은 사우디 주요 도시와 석유생산시설을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등으로 공격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소형 드론 4대로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정유시설을 타격하는 등 드론 공세를 시작했다.

사우디군의 방공 전력은 중동 국가 중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된다. 다만 적 항공기 대응 능력과 달리 드론에 대해선 속수무책이다. 드론은 크기가 수십㎝에 불과하고 지면에 바짝 붙어 비행한다. 일반 방공 레이더로 잡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사우디는 저고도 비행 드론을 요격하는 데 필요한 최신형 방공무기 도입에 관심을 보였다. 미국과 유럽의 내로라하는 메이커로부터 신형 방공무기를 조달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2018년 10월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으로 풍비박산 나버렸다. 사우디 정부는 왕실에 비판적인 언론인 카슈끄지를 터키 영토에서 암살한 의혹을 사고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사우디를 공식적으로 제재하지 않았지만 무기 수출 승인을 꺼려했다. 자국 언론인을 타국에서 살해한 것은 사실상 테러 행위이므로 사우디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에 정치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사우디는 1년 넘는 설득 끝에 비밀 유지 조건으로 독일로부터 저고도 방어 시스템을 구매했다. 2019년 10월 독일 라인메탈이 생산하는 ‘스카이마스터’ 방공 시스템 한 세트를 도입한 것이다. 양국이 비밀에 부쳤지만 이내 거래 사실이 노출됐다.

사우디가 구매한 스카이마스터는 35㎜ 기관포 4개와 엑스(X) 밴드 레이더, 사격통제소로 구성된 고정식 방공 시스템이다. 사우디는 해당 시스템 한 세트를 2억1000만 유로(약 2842억9800만 원)에 구입했다. 동급인 한국 ‘비호’ 자주대공포 가격이 대당 50억 원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바가지를 쓴 셈이다. 이처럼 엄청난 가격을 감내한 것은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야전방공 분야 기술이 취약한 미국이나 영국에선 구입할 만한 모델이 없다. 그나마 자동화된 대공포를 생산하는 나라는 독일뿐이다. 선진국 기술을 도입해 독자 모델을 개발하는 방안도 있지만 이럴 경우 전력화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이에 사우디는 독일에 웃돈을 주고 대공포를 구입해 우선 ‘급한 불’을 끈 다음, 고성능 대공포 국산화 사업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다. 사우디가 파트너로 주목한 것이 바로 한화디펜스다.
빈 살만 왕세자의 ‘비전 2030’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뉴시스]

최근 사우디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의 강력한 의지로 방위산업 육성에 나섰다. 제1부총리와 국방장관을 겸직한 빈 살만 왕세자는 고령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을 대신해 사실상 국가 통치 전권을 쥐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의 산업구조 전체를 개편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 경제는 석유 의존도가 절대적인 상황이다. 석유를 언제까지 채굴할 수는 없기에 사우디는 석유 고갈 이후 어떻게 경제를 유지할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이에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고갈에 대비한 대규모 국가 개발 프로젝트 ‘비전 2030’을 내놨다. 사우디 경제구조를 기존 석유 의존 경제에서 첨단기술과 국제금융 중심 경제로 전환하는 것이 뼈대다. 사우디 국영 방산업체 SAMI도 이러한 국가 전략 속에서 2017년 출범했다. 사우디 정부가 2030년까지 국방비 지출의 50%를 국산 장비 구입에 사용한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SAMI도 세계 각국과 방산 협력에 나섰다. 출범 직후 러시아와 접촉해 소총과 대전차 미사일, 단거리 로켓 등의 현지 기술도입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록히드마틴, 보잉, 레이시언, 제너럴다이내믹스는 물론, 유럽 탈레스, BAE 시스템스와도 파트너십을 맺어 협업하고 있다.

한국과 사우디의 첫 번째 방산 협력 산물인 비호-II는 한국군 K30 비호와 이름만 같을 뿐, 뼈대부터 다른 최첨단 방공 시스템이다. 일각에선 ‘방공 시스템(air defense system)’이 아니라 ‘전투 시스템(combat system)’이라고 부를 정도로 만능 전투장비라는 평가도 나온다. 비호-II 주포는 지능형 공중폭발탄을 사용할 수 있는 40㎜ 기관포이며 모듈화된 미사일 무장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포탑 좌우에 각기 다른 미사일 발사대를 장착할 수 있어 스팅어·신궁 등 단거리지대공미사일은 물론, 헬파이어·스파이크·현궁 같은 대전차 미사일도 운용할 수 있다. 무기체계의 눈이라 할 수 있는 레이더 성능도 강력하다. 비호-II는 첨단 능동전자주사식 위상배열레이더와 전자광학추적장치 등 복합 센서를 적용해 적 항공기와 헬기뿐 아니라, 드론과 순항미사일도 요격할 수 있다. 차후 주포를 레이저 무기로 교체할 수 있는 확장성까지 갖췄다. 현존하는 세계 최강 저고도 방공 시스템이 될 전망이다.

비호-II 합작 생산은 한국 방산업체가 사우디 방산시장에 진입하는 교두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우디의 안보 과제는 이란과 후티 반군에 대한 대응이다. 이란의 대규모 탄도·순항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주요 도시와 전략 거점을 지킬 수 있는 방공 시스템이 필요하다. 후티 반군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압도적 화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형 전차와 포병 화기, 그리고 정밀유도무기가 필요하다. 한국은 사우디가 필요로 하는 우수한 무기체계를 합리적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나라다.

한국 방위산업 부스터

K2 전차. [사진 제공 · 방위사업청]

K9 자주포. [사진 제공 · 방위사업청]

우선 중거리미사일의 경우 최근 아랍에미리트(UAE)가 구매한 천궁-II가 이미 완성돼 있다. 사우디군은 K2 전차에도 눈독을 들인다. 사우디군의 M1A2 전차를 곳곳에서 격파해 골치를 썩이는 후티 반군의 신형 RPG-29나 9K135 ‘코넷’ 대전차 미사일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티 반군의 은거지를 파괴할 수 있는 화력을 갖춘 것은 물론이다. 사우디군의 구형 M109 자주포 600여 문은 최근 세계 시장점유율 50%를 차지한 K9으로 대체 가능하다. 

사우디의 무기체계 국산화는 빈 살만 왕세자가 국왕이 되면 더 가속화할 것이다. 한국 방산업체들은 이미 사우디에 다양한 제안서를 내면서 잭팟을 노리고 있다. 사우디와 협력은 한국 방위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부스터가 될 전망이다. 개별 기업은 물론 정부 차원의 전략 수립과 지원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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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324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