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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북한의 ‘자력갱생’ 아파트

입력 | 2022-02-03 03:00:00

주성하 기자


새해 벽두부터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가 터졌다. 언론은 일제히 ‘후진국형’ 인재라고 비판했다. 무리한 속도전을 벌여 콘크리트 양생 기간이 지켜지지 않았고, 불량 레미콘을 사용했고,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를 썼으며, 엄격한 감독이 부재했다는 등이 사고 원인으로 거론됐다. 듣고 보니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어 보인다. 붕괴 원인이 하나씩 거론될 때마다 속으론 ‘이건 전형적으로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북한은 이를 감출 생각을 하지 않고 자랑한다는 것이다.

가령 사고 이후 전문가들은 1개 층을 올릴 때 콘크리트 타설과 양생에 하절기는 5∼6일, 동절기는 12∼18일이 걸려야 하는데, 붕괴 아파트는 동절기임에도 엿새 만에 1개 층씩 올렸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북한은 평양 여명거리를 건설할 때 하루에 한 층씩 올렸다고 선전하다 못해 18시간 동안 한 층씩 올렸다고 자랑했다. 그래서 여명거리의 대표적 건물인 70층 아파트는 74일 만에, 55층 건물은 60일 만에 골조 공사가 끝났다면서 ‘수도건설 역사에 길이 남을 만리마속도’ ‘평양속도’라고 선전했다. 북한의 아파트 건설 장비가 한국의 전문 건설기업과 비교할 정도가 아닐 텐데, 거의 삽질로 74일 만에 70층을 완공한 것이다. 70층 공사에 약 2만 명의 인력이 동원됐다고 한다. 이 중에는 전문 인력도 있겠지만, 군인과 평양시민 등 비숙련 인력이 태반이다. 한국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들에 비하면 몇 수 위 전문 인력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전문적으로 품질 관리를 점검받는 레미콘 업체도 골재를 잘못 관리했다고 질타당했는데, 북한의 골재 품질은 어떨까.

지난달 15일 조선중앙TV는 양강도 삼지연 공사 3단계 과정을 53분이나 다큐를 통해 보여주었다. 북한은 삼지연 건설이 ‘농촌 진흥의 표준’이라며 ‘자력갱생전시관’도 만들어 전국이 따라 배우게 했다. 다큐에선 부족한 자재와 에너지, 중장비 등의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절절하게 보여주었는데, 사실 별것은 없다. 중장비가 없으니 영하 30∼40도 혹한에서 사람이 소발구를 끌었다는 등 늘 그랬듯이 몸으로 때웠다는 선전이 대부분이었다.

정작 눈길이 가는 것은 자재 조달 설명이었다. 건설에 없어서는 안 될 자재인 시멘트가 부족해서 삼지연의 흔한 원료인 규조토를 섞어 썼다고 한다. 또 삼지연에 많은 진흙에 인근 감자가루 공장에서 나오는 연재를 섞어 연재벽돌로 시공했다고도 했다. 이게 자랑할 일인가. 물론 삼지연엔 10층 이상 고층 건물이 거의 없어 규조토와 진흙 벽돌로 건설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 건설 기준엔 한참 못 미칠 것이 뻔하다.

함남 검덕 5000채 건설 현장은 또 어떨까. 김정은이 수시로 현장을 찾는 삼지연에도 없는 시멘트가 검덕이라고 넉넉하게 보장될 수는 없다. 이곳에선 어떤 건축 자재를 썼는지는 몰라도 삼지연보다 더 형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이 얼마 전에 검덕에 준공된 아파트들이라며 공개한 사진을 보고는 입이 딱 벌어졌다. 어떤 자재를 썼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건축에 무지한 눈으로 봐도 아예 개념 자체가 없어 보였다. 암반층 위도 아닌 것 같은데, 낭떠러지 경사 바로 옆에 바짝 붙여서 아파트를 지었다. 흙이 조금만 더 씻겨 나가면 아파트가 붕괴될 지경인데, 몇 년이나 더 버틸지 의문이다. 뒷산도 민둥산이라 폭우가 쏟아져 또 산사태가 나면 피해가 커질 것 같다.

검덕 아파트 배치 구도만 봐도 북한이 어떤 태도로 아파트들을 지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아프리카 후진국도 저렇게 집을 짓지 않는다. 김정은이 하도 독촉을 해대니 건설 현장 간부들은 목을 부지하기 위해 위치에 상관없이, 편의시설도 제대로 없이 살림집만 5000채 짓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것 같다.

그럼 평양에 건설한다는 1만 채 아파트는 제대로 지어졌을까. 하루에 한 층씩 올린다고 자랑하고, 시멘트가 없어 진흙을 섞었다고 자랑하고, 장비가 없어 숱한 비숙련 인력이 몸으로 때우는 그런 공사장을 상상하면 아파트를 공짜로 줘도 살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열악한 건설 현장을 이렇게 비웃어도, 결론은 여명거리 70층 아파트는 붕괴되지 않았는데 광주 화정아이파크는 붕괴됐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일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