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라 모데르존베커 ‘결혼 6주년 기념 자화상’, 1906년.
임신부로 보이는 여성이 알몸으로 포즈를 취하고 서 있다. 엉덩이에는 흰 천을 둘렀고, 상체는 벗은 채 목에 호박 목걸이를 하고 있다. 요즘에야 만삭의 누드 사진이나 누드 보디 프로필을 찍는 이들이 많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20세기 초다. 게다가 그림 속 모델은 화가 자신이다. 도대체 그녀는 누구기에 이렇게 과감한 자화상을 그린 걸까?
여성은 전문 미술 교육을 받는 것도, 누드화를 그리는 것도 금기시되던 시대에 누드 자화상을 그린 이 용감한 화가는 파울라 모데르존베커다. 1876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브레멘에서 자란 그녀는 개인 교습을 받으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브레멘 근처 보르프스베데 마을 예술 공동체에서 활동하다 1900년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이듬해 돌아와 사별한 동료 화가 오토 모데르존과 결혼하면서 그의 어린 딸을 양육했다.
1906년 초 모데르존베커는 남편과 예술 공동체를 영원히 떠나기로 결심했다. 파리로 가서 예술에만 전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과감한 누드 자화상은 그해 봄 파리에서 그렸다. 서른 살의 화가는 큰 눈으로 화면 밖 관객을 응시하고 있다. 왼손은 하체를 가린 천을 살짝 잡았고, 오른손은 배 위에 얹었다. 임신부처럼 포즈를 취했지만 사실은 임신한 상태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가 배 속에 품은 건 창작의 씨앗이었는지 모른다. 실제로도 모데르존베커는 이 시기에 생애 가장 혁신적인 작품들을 왕성하게 생산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