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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공포와 미지 기행이 피워낸 표해록[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3〉

입력 | 2022-02-03 03:00:00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항해 역사는 표류 역사다. 망망대해를 낙엽처럼 떠다니다가 외국에 표착한 조선인들이 있었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지 못한 채 해류에 목숨을 맡길 수밖에 없는 막막함과 공포에 휩싸인 나날. 천운으로 육지에 닿았으나 낯선 땅에서 우여곡절 끝에 송환된 사람들. 임진왜란 이후부터 19세기 말까지 일본에 표착한 조선인이 수천 명에 달한다. 베트남, 대만, 중국 등에 표류됐다가 생환한 사람들도 허다하다. 지난해 국립제주박물관에 근무하며 소장품 중에서 번역할 만한 고문헌을 검토한 일이 있다. 상설전시실에 나란히 진열돼 있는 장한철의 표해록, 최부의 표해록, 이익태의 지영록을 살피다가 미지의 땅에 표착해 극적으로 생환한 사람들 이야기를 접했다.

장한철은 제주 애월 사람으로 향시에 여러 번 붙었으나 가난해 과거 보러 갈 수가 없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제주 관가에서 노자를 마련해 줘 한양을 갈 수 있게 됐다. 1770년 12월 배를 탄 장한철 일행 29명은 강풍을 만나 조난당했다. 며칠을 표류하다가 유구국(오키나와) 무인도인 호산도에 닿았다. 과일을 따 먹거나 전복 등 해산물을 잡아서 먹으며 연명하다가 왜구에게 약탈당했다. 큰 배가 지나갈 때 연기를 피워 구조를 요청해 안남국(베트남) 상선에 구조됐다. 사흘 뒤 한라산이 보이자 자신들이 ‘탐라인’이라는 것을 알리고 내려주기를 간청했다. 안남 상인들은 탐라인과의 원한을 말하며 표착했던 배에 도로 태워 바다로 밀어 넣었다. 다시 표류하다가 청산도에 닿았을 때 8명만 생존했다. 장한철은 제주로 돌아와 자신이 겪은 사건을 표해록으로 남겼다.

제주도 관원으로 부임한 최부는 1487년 부친상을 당해 육지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16일간 표류했다. 해상 강도를 만나 탈출한 후 명나라 절강 하산이라는 섬에 표착했다. 왜구로 오인받아 사형당할 위급한 상황에서 중국 관리를 만나 신분을 밝히고 풀려난다. 대운하를 따라 북경으로 이송됐고, 반년 만에 3200km를 거슬러 조선으로 돌아왔다. 최부는 중국 대륙을 종단하며 경험한 일을 조정에 알렸고, 성종은 서책으로 만들 것을 지시했다. 명나라의 교역, 운하, 산천, 기후, 풍속 등에 관한 내용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했다. 최부는 처음 보는 고래와 신비한 바다 생물, 배고픔과 두려움에 떨던 순간을 손에 잡힐 듯 박진감 넘치게 썼다. 그의 표해록은 일본 에도시대에 상업 출판돼 개정판까지 낼 정도로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제주목사 이익태가 지은 지영록에는 10여 건의 표류기가 수록돼 있는데 ‘김대황표해일록’이 주목된다. 김대황 일행은 공납할 말을 싣고 출항했다. 추자도 앞바다를 지날 때 북동풍을 만나 31일을 표류하다가 안남국에 표착했다. 조선과 교류가 없던 안남에서 갖은 노력 끝에 중국 각 지방을 거쳐 16개월 만에 귀환했다. ‘김대황표해일록’은 이익, 박지원 등 당대 실학자들에게 주목받았다. 머나먼 안남국에 표류해 어떤 경로를 거쳐 귀환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조선에 표류한 중국인 송환 선례로 삼았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다.

타국의 정보를 담은 표해록을 통해 조선은 새로운 세계를 인식했다. 난바다의 아득함 속에 천운으로 살아난 사람들의 기록인 표해록은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