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사회부 차장
설은 만두의 명절이다. 해묵은 김장 김치와 두부, 당면을 버무린 고향집 만두는 쪄도 맛있지만 기름을 두른 팬에 튀기듯 구우면 그만한 별미가 없다. 이름난 음식점 만두라도 몇 번 먹으면 감흥이 사라지는 데 비해 끼니를 대신해 계속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어릴 적 식구들이 함께 둘러앉아 만들어 배가 터지도록 나눠 먹던 추억 때문일 것이다. 장성해 충청과 서울, 경기에 흩어진 식구들은 설의 고향집 만두를 기다리며, 또 그렇게 함께 먹은 만두의 힘으로 한 해를 살아간다.
올해 설에는 많은 이들처럼 기자도 만두를 먹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의 급속한 확산 탓이다. 귀성 여부를 고민하던 차에 ‘내려오지 말라’는 부모님의 전화를 받고 단념했다. 명절을 느긋한 심정으로 보낸 것도 사실이지만 가족들이 모두 모이지 못한 지가 오래되다 보니 아쉬움이 크다. 기자만의 심정이 아닐 것이다.
집 떠난 이들이 돌아와 만두 같은 음식을 함께 먹어야 설답다. 차례와 성묘가 중심 의례이던 설은 산업화를 거치며 돈 벌러 도시로 떠난 가족들이 재회한다는 의미가 커졌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소식조차 잘 닿지 않던 식구들도 설에는 불쑥 나타나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했다.
돌아오지 않는 자식, 아버지, 동생이 기적처럼 생환하기를, 적어도 발견되기를 가족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한파 특보에도 사고 현장 앞 가설 텐트를 떠나지 못하던 한 가족은 “어제 꿈에서 (실종자가) 산을 타고 내려왔다”며 애끊는 심정을 전했다. 실종자를 생각하면 “먹는 것도, 앉아 있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가족들은 “무리한 구조 작전으로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데 이런 이들에게도 ‘악플’로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이들이 있다.
만두는 원래 제사 음식이다. 고대 중국에서 천자가 제사를 지낼 때 제물로 올렸다고 한다. 삼국시대 촉의 제갈공명이 남만을 칠 때 죽은 이들의 원혼 탓에 강에 풍랑이 일자 만두를 빚어 던져 달랬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다. 만두의 기원은 누군가에 대한 죄책감 또는 미안함과도 맞닿아 있다. 사고의 책임자들은 벌을 받겠지만 무참한 사고는 되풀이되고 있고, 어느 누구라도 사고를 겪지 말란 법은 없다. 명절에 먹지 못한 만두가 떠오른다면 마음으로라도 실종자의 구조를 함께 빌고 그 가족들을 응원해 주자.
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