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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죽기전 멜로디]스마트리스 콘서트의 기억

입력 | 2022-02-04 03:00:00

1996년 8월 10일 영국 하트퍼드셔주 넵워스에서 열린 밴드 오아시스의 콘서트 장면. 멤버 노엘 갤러거(오른쪽)의 기타 연주를 12만5000명의 관객이 지켜보고 있다. 소니뮤직 제공

임희윤 기자


“저기요. 혹시, 오아시스 공연 티켓 남았나요?”

영국식 악센트. 목소리가 다급하다. 주인공은 곱슬머리 젊은이. 두꺼운 연결선이 동글동글 말린 집 전화 수화기 너머로 그 외침이 간절하다. 누군가는 시내 레코드점으로 내닫는다.

“혹시 오아시스 티켓 남은 것 있나요?”

이리 닫고 저리 닫다 결국 티켓 한 장 손에 쥐지 못한 청년은 작은 공부방의 싱글 침대에 누워 BBC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추고 실황 생중계에 귀를 기울인다.

지난해 말 공개된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Knebworth 1996’를 보다 그만 몹쓸 추억에 빠져들었다. 영화 속 영국 청년들의 동분서주가 수면 중이던 나의 뇌세포 몇 개를 건드려서다.

오아시스는 1996년 여름, 잉글랜드 교외의 넵워스 지역에서 이틀간 무려 2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초대형 콘서트를 열었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 저 공연을 예매하기 위해 영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전화통 붙잡고 ‘예매 대전’에 참전했다는 비공식 기록도 있다. 입소문과 전화 예매, 현장 판매로 티켓은 모두 팔려나갔고 오아시스는 이틀간 각각 12만5000명의 관객 앞에 서서 뜨거운 무대를 펼쳤다. 위대한 록의 송가 ‘Wonderwall’ ‘Don‘t Look Back in Anger’를 발표한 지 얼마 안 된 오아시스, 비틀스의 후계자로 불리던 그 최전성기 오아시스의 무대는 기본. 그 시절 팬들의 행동 양태 역시 귀한 자료가 되니 ‘Knebworth 1996’의 방점은 역사적 무대 넵워스 못잖게 그 뒤에 달린 ‘1996’에도 있는 셈이다.

#1. 한국에서 대형 야외 록 페스티벌 시대가 본격화한 것은 2006년 여름이다. 1999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트라이포트 페스티벌이 그 모체였지만 트라이포트는 폭우로 반쪽짜리였다. 2006년 여름, 제1회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폰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이 그 이듬해인 2007년 6월. 휴대전화와 일부 스마트폰이 2006년에도 있었지만 그 기능이란 게 그다지 스마트하지 않았다. 폰에 달린 카메라 화질은 눈 뜨고 봐주기 힘든 수준. 명장면을 남기려 묵직한 ‘디카’를 몇 번 들어올리긴 했지만 결국 맨손으로 즐기는 것이 최상의 감상법, 최고의 기억법이었다.

#2. ‘Knebworth 1996’에서 멤버 노엘 갤러거의 기타 솔로나 리엄 갤러거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능가하는 명장면도 따로 있다. 끝없이 뻗은 평야를 가득 메운 12만5000명의 관객이 일제히 하늘로 양손을 뻗으며 ‘And so, Sally can wait’(‘Don’t Look Back in Anger’)나 ‘A champagne supernova in the sky’(‘Champagne Supernova’) 같은 후렴구를 제창하는 순간 말이다. 다큐멘터리에서도 한 관객은 이렇게 술회한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잖아요. 돌아보면 정말 대단했어요. 12만 명이 전부 무대만 바라보며 노래 한 소절 한 소절에 집중했으니까요.”

#3. 역시 애먼 카페라테만 손에 쥐면 ‘역시 그 시절이 진짜였네’ 운운하는 ‘나 때’ 이야기가 자동 발사된다. 불편했던 시절에 관한, 세탁된 좋은 기억만 곱씹으면 답이 없다. 스마트폰이 생기고 좋은 일이 얼마나 많았나. 백과사전과 열람실을 손바닥 안에 쥐었고 단톡방도 생겼다. 생일이면 여기저기서 달콤한 선물도 날아온다. 티켓 예매는 물론이고 식당 예약이나 배달 주문도 갸륵한 폰 하나면 오케이다. 그래도 양손을 머리 위로 발사하던 그 시절 콘서트, 그때의 내가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4.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감각의 80%를 시각에 의존한다고 한다. 그러니 뭔가 특별한 사건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안구나 뇌보다 기록의 정확도가 높은 휴대전화 카메라를 꺼내려는 것은 대단히 스마트한, 본능적 반사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2007년 이후 내 폰으로 숱하게 찍어둔 영상들. 그중에 몇 개나 다시 돌려봤던가. 얼마 전, 크랜베리스의 1994년 미국 우드스톡 페스티벌 출연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봤다. ‘Dreams’를 듣다 까닭 모를 눈물이 흘렀다. 그날, 그 시간의 감흥에 만취한, 양손이 자유로운 수만 명의 관중을 보았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속 사진기자 숀(숀 펜)의 말처럼, 그들은 “그 순간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