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에세이스트
엄마의 취미는 배우기다. 멀리에 혼자 사는 엄마가 마음 쓰여 자주 전화를 거는데 엄마는 그때마다 바쁘다. “엄마가 지금 뭐 배우고 있어”라며 대단히 중요한 비밀을 몰래 알려주는 사람처럼 속삭이곤 뚝 전화를 끊는 엄마. 대체 뭐하기에? 나는 안달이 나서 전화를 기다린다.
엄마는 붓글씨를 쓰고 있었다고 했다. 옮겨 쓰고픈 글이 있어서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선생님이 어찌나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인지, 휴대전화 울렸다고 엄마 막 혼난 거 있지.” 볼멘소리로 대답하는 엄마.
어느 날엔 엄마가 기운 하나 없는 목소리기에 서예 선생님께 또 혼났냐고 물었다. “얘는, 그만둔 지가 언젠데. 요즘은 현대무용 배워. 재밌는데 엄청 힘들다. 그런데 딸, 엄마가 춤을 처음 춰보는데 너무 자유롭다? 파랑새가 된 거 같아. 훨훨 날아다녀.” 포로로 웃는 엄마.
젊은 수강생들 뒤에 외따로 떨어져 요가하는 시간이 엄마는 그저 충분히 행복하다고 한다. 요가매트만큼의 엄마의 세상. 조용히 호흡하고 천천히 움직이다가 가만히 기뻐하는, 그런 엄마를 생각하면 나이 든 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떠오른다. 갈색 털은 빳빳하고 윤기를 잃었지만, 느리고 차분한 몸짓은 우아하고, 녹색 눈동자는 깊고 푸른. 나는 그런 엄마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혼자서도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 그만두기도 시작하기도 쉽지만 다시, 또다시 배운다. 이상하고 자유롭고 새로운 삶을 다시, 또다시 시도해본다. 그런 사람에겐 모든 실패와 시작이 경험이고 감탄이라서, 오래도록 혼자였지만 엄마의 세상은 선명하고 다정하다.
바쁘게 일하다가 엄마의 메시지를 뒤늦게 확인한 날이었다. 엄마는 캘리그래피를 배워봤다며 처음 그린 작품 사진을 보냈다. ‘엄마가 글씨를 못 쓰잖아. 그래도 이건 예쁘게 써 보고 싶었거든. 붓글씨보단 낫다.’ 엄마의 첫 작품에 눈물이 핑 돌아 나는 답장하지 못했다. 동그란 달 아래 내가 처음 쓴 책 제목이 그려져 있었다. 아무리 참아 보려 해도 이어진 엄마의 메시지는 나를 울리고야 만다.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긴긴밤이었어도 우리 잘 걸어왔잖니. 사랑하고 사랑한다. 딸아.’ 한결같이. 엄마의 특기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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