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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 동생까지 잡아간 군부 향해 굴복 대신 총잡은 미얀마 여대생[사람, 세계]

입력 | 2022-02-04 03:00:00

한 가족 삶 바꾼 ‘쿠데타 1년’



미얀마의 만달레이대 법학과에 재학 중인 테인 산디 소(19·오른쪽)의 가족사진. 지난해 6월 미얀마군은 민주화 시위를 주도한 아버지를 검거하려다 실패하자 소와 어머니(가운데), 여동생(당시 4세)을 ‘인질’로 체포했다. 주리스트 사이트 캡처


지난해 6월 미얀마 군과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집에는 세 모녀가 있었다. 고향 집을 찾은 열아홉 살 법대생 테인 산디 소는 어머니와 함께 막내 여동생을 돌보고 있었다. 여동생은 네 살이었다. 군경은 이미 떠나고 없는 아버지의 행방을 따져 물었다. 교사인 아버지는 지역에서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수배된 상태였다.

이날 막내 여동생은 언니, 엄마와 함께 체포됐다. 시위 주동자를 유인하기 위해 가족을 인질로 잡아가는 것은 미얀마 군부의 흔한 수법이었다.

지난해 2월 1일 발생한 군부 쿠데타 이후 소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1988년 미얀마 민주화운동 당시 학생운동을 했던 아버지는 교사 신분으로 시위에 앞장서다 수배자가 돼 도피 생활을 했다. 오빠(25)와 남동생(15)은 언제 군경에 끌려갈지 몰라 집에서 도망쳐야 했다. 오빠는 소와 어머니가 구속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구치소에 돈을 보내려다 발각돼 감옥에 갇혔다. 남동생은 군부에 맞서기 위해 인민방위군(PDF)에 들어갔다.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는 소에게 구치소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수갑을 차고 돌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조사를 받았다. 씻을 땐 차가운 변기 물을 이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됐지만 치료는 기대할 수 없었다. 막냇동생만 다섯 살 생일이 지나고 이틀 뒤 풀려났다. 가족의 구금 소식을 전해 들은 아버지는 “딸의 건강이 너무 걱정된다”며 이웃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소와 어머니는 타협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부당한 재판”이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그러자 법원은 반란에 가담했다며 모녀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이 끝나고 소의 어머니는 호송 트럭에 오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 둘 다 3년형을 받았어요!” 어딘가에 있을 남편에게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소의 친구는 “소에게 용기는 그의 본질(character)”이라고 했다.

체포된 지 약 4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모녀는 풀려났다. 출소를 위해 ‘다시는 시위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서약해야 했다. 하지만 소는 “평화적 시위를 먼저 짓밟은 것은 군부”라며 남동생과 함께 인민방위군에 들어갔다.

이제 소에게 예전처럼 과제를 하고 발표 준비를 하던 일상은 없다. 소총 사격을 연습하며 실전에 대비한 전투 훈련을 받는다. 틈틈이 전쟁터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생각한다. 소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발생 1년이 되는 1일, 미국 피츠버그대의 온라인 매체인 ‘주리스트(Jurist)’에 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이 모든 것이 평범한 법대생이었으면 몰랐을 일이다. 지금 나는 유능한 여성 돌격대원이 되기 위해 인생을 바치며 이 자리에 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