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베트남-미얀마인 이동 차단”… 4m 높이 철조망 세우고 카메라 설치 2년간 최소 459km 장벽 신설-보수, 시진핑 “신성한 땅 보호… 합심하라” 왕래 빈번했던 국경지대 주민들… 인적-물적교류 끊기며 생계 위협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입을 막기 위해 베트남과 접한 남부 국경지대에 건설 중인 펜스. 완성될 경우 전체 길이가 약 5000km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트위터 영상 캡처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입을 막기 위해 베트남과 미얀마에 이르는 남부 국경지대에 새로운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 보도했다. 4일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제로 코로나’ 정책을 추진해 온 중국 정부가 장기적인 경제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웃 국가들을 상대로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는 것이다.
○ 中 “코로나19 원천 차단 위해 장벽 건설”
WSJ에 따르면 중국은 남부 국경지대에 길이 약 5000km에 이르는 인공 장벽을 건설 중이다.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부 윈난성의 루이리(瑞麗)시에선 지난 2년 동안 철조망과 감시 카메라, 센서 등을 갖춘 펜스 건설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서쪽에 있는 베트남과의 국경 지대에도 중국은 지난해부터 약 4m 높이의 철조망을 세웠다.중국 정부는 장벽 건설의 목적에 대해 남쪽 국가들로부터 무역업자와 근로자, 밀수업자 등 사람들의 이동을 막아 코로나19 유입을 원천 차단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벽을 두고 고대 중국이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은 것에 비유해 ‘남쪽의 만리장성’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지난해 8월 시진핑 국가주석은 윈난성 국경 지대 주민들에게 서한을 보내 “신성한 땅을 잘 보호해 달라”면서 “뚫을 수 없는 장벽을 건설하는 데 합심하라”고 주문했다. 베트남 북쪽 광시좡족자치구에서는 당 지도부가 간부들에게 “모두 나서서 단호하게 팬데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라”면서 “중국의 ‘남쪽 관문’을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윈난성의 당서기는 당 지도부와 시 주석을 안심시키기 위해 “굴하지 않고 죽음에 맞서는 정신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 국경 주민들 “생계 막막”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인근 국가들과의 인적·물적 교류를 어렵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경 지대에 거주하는 지역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베트남 북부 꽝닌성에도 중국과의 국경지대에 견고한 철조망과 감시 카메라 등이 도처에 생겨났다. 이 마을에 사는 31세 농부는 “이제 베트남 쪽 사람들이 벌목을 위해 중국에 가거나 중국 농부가 물소를 방목하기 위해 베트남에 올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양쪽 국경지대 주민들이 식재료 등을 교환하기 위해 왕래가 빈번했는데 새로운 장벽 건설로 모든 게 막혀버렸다고 한다.한때 보석류 무역으로 번성했던 루이리시도 최근 거듭된 봉쇄 조치로 경제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 지역에선 미얀마로부터의 코로나19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봉쇄 정책이 시행됐다. 그 결과 지난해 1∼9월 루이리시의 경제는 8.4% 뒷걸음질쳤고 불황을 못 견딘 주민들이 대거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루이리시는 국경 봉쇄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최근에는 사람 간 접촉을 하지 않는 새로운 무역 방식을 개발하기도 했다. 미얀마에서 화물을 실은 트럭이 국경에 도착하면 일단 수입품에 대한 살균 작업을 하고 48시간을 기다린 뒤, 로봇이나 중장비를 동원해 화물을 중국 트럭으로 실어 나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통관 소요 시간이 크게 늘어나고 신선식품들은 일부가 썩어버려 교역을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 많다. 중국 외교부 측은 WSJ의 질의에 “국경을 강화하는 것은 널리 인정되는 국제 관행이며 펜스를 설치하면 국가 간 코로나19 감염을 방지할 수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