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침묵을 깬 여성들/이은기 지음/416쪽·2만5000원·사회평론아카데미
15세기 제단화에 그려진 카타리나는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을 들고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하지만 현실 속 카타리나는 부패한 성직자들을 향해 “도적질을 일삼는 날강도”라고 비판할 정도로 용맹한 여성이었다. 사회평론아카데미 제공
“두려워 말고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일어서십시오.”
1376년 프랑스 아비뇽에 머물던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보낸 이는 사제나 수도사가 아닌 이탈리아 시에나 출신의 29세 수녀 카타리나. 교황권이 몰락해 아비뇽으로 교황청을 옮긴 지 67년째, 카타리나는 로마로 귀환하기를 주저하는 교황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설득했다. 이에 교황은 이듬해 ‘아비뇽 유폐’를 끝내고 로마로 귀환을 단행한다. 카타리나는 33세에 세상을 떠난 뒤 성녀로 추앙받으며 수많은 제단화에 그려졌다. 하지만 저자는 그녀가 성녀라기보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를 뛰어넘는 위대한 정치가였다고 말한다.
힐데가르트의 ‘교회의 세 위계’라는 그림에서 왕관을 쓴 거대한 여성이 인간 세상을 품에 안고 있다. 중세시대 수녀였던 힐데가르트는 세상을 포용하는 성스러운 교회를 여성에 빗대 표현했다. 사회평론아카데미 제공
시에나 출신 안젤라(1248∼1309)는 요즘으로 치면 행위예술가였다. 42세 늦은 나이에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입회한 그는 예수의 시신을 관에 넣는 미사극을 보다 자신도 관에 들어가 시신 옆에 누워 입을 맞췄다. 혹자는 광인이라 일컬었지만 저자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신앙심을 표현한 주체적 여성으로 그를 해석한다.
책은 남성 중심의 중세가 만들어낸 그늘도 보여준다. 카타리나가 33세에 세상을 떠난 건 금식을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당대 성직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따라 스스로 고행을 했다. 카타리나는 죽음에 이르는 가학적 금식을 견디며 여성이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한 사회적 비난을 잠재웠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교황청은 연약한 성녀의 이미지 속에 그를 가뒀다. 제단화 속 카타리나는 창백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다. 숨지기 두 달 전 출판을 위해 “내가 쓴 글을 모아 달라”고 당부한 당찬 여성은 사라졌다.
저자는 성녀라는 장막을 벗겨낸 후 이들이 세상에 남긴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힐데가르트는 44세에 첫 책 ‘쉬비아스’ 서문을 쓰며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하늘에서 내게 하는 소리를 들었다. 소리 높여 말하라 그리고 그것을 써라.” 어쩌면 그 음성은 자유롭게 뜻을 펼치고 싶었던 자신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더는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