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원(41·평창군청)은 최근 6차례 동계올림픽에 빠짐없이 참가했다. 모두 선수로 쓴 기록이다. 21세기에 개최된 동계올림픽에 늘 선수 이채원의 이름이 존재했다.
나서면 역사가 되는 이채원은 베이징에도 족적을 남겼다. 이채원은 5일 중국 장자커우의 국립 크로스컨트리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여자 15㎞ 스키애슬론에서 55분52초60으로 레이스를 마쳤다.
성적은 65명 중 61위. 애초 순위는 큰 의미 없었다. 출전 선수 중 최고령축에 속하는 이채원은 중국 입성 후 독감 주사를 두 번이나 맞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다른 곳과 달리 장자커우의 국립 크로스컨트리센터는 클래식과 프리스타일 코스가 같다는 점도 이채원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채원은 “한마디로 정말 힘들었다. 날씨도 춥고 몸도 안 좋았다. 중간에 정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을 위해 참고 완주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가족들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생각났다.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더 힘내려고 했다. ‘그래도 완주는 하자’는 생각으로 했다”고 보탰다.
이채원은 국내 크로스컨트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4년 전 평창 대회를 마지막으로 올림픽 은퇴를 선언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경쟁력은 여전했다. 이채원은 한참 어린 후배들을 모두 밀어내고 선발전 1위를 차지, 베이징에 입성했다.
올림픽 6회 출전은 국내 스포츠사에서 이규혁(빙상), 최서우, 최흥철, 김현기(이상 스키) 만이 갖고 있는 대기록이다. 이제 이채원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올림피언으로 지내는 20년 동안 이채원의 인생은 많이 바뀌었다. 남편(장행주씨)을 만나 딸(장은서)도 얻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은서양은 지난달 25일 선수단 결단식에 “훈련을 떠나는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힘차게 운동하는 엄마 모습이 무척 자랑스럽다”는 내용의 깜짝 음성 편지를 남겨 큰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채원은 “예전에는 ‘엄마 파이팅’이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엄마,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다치지 말고 최선을 다하고 돌아와’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딸에게 한마디를 남겨달라고 부탁하자 이채원은 “엄마 힘들다”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제 이채원에게 남은 종목은 2개. 4년 뒤가 없다면 진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이채원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이니깐 내가 갖고 있는 걸 모두 쏟아내고 싶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편인데 몸 관리를 잘해서 잘 마무리 짓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