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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처럼…은퇴후 도전한 예술가 명함이 3장 됐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입력 | 2022-02-06 07:00:00

[이런 인생 2막]금융인 출신 ‘예술덕후’ 김영균 씨
허투루 보낸 95세 노인에 큰 자극… 은퇴후 서예-사진-그림에 매진
작품으로 늦깎이 수상까지… 돈 없어도 예술 즐기는데 문제없어
노년기엔 새 지식보다 경험 활용… 인정욕구 채워지면 자기만족 중요




자칭 ‘예술 덕후’ 김영균(75) 씨는 명함이 세 가지다. 직업란에 수채화가, 사진작가, 서예가라 붙은 명함들을 때와 장소에 맞춰 내놓는다. 금융감독원을 정년퇴직한 뒤 민간기업 감사 등을 거쳐 2008년 모든 직책을 내려놓을 당시, 그가 돌연 손에 잡은 것이 붓과 카메라였다. ‘남은 인생 30년은 예술을 따라가겠노라’며 ‘예술 덕후’를 선언했다.

그로부터 14년 간, 수채화와 사진, 서예를 연마했고 지난달 초에는 자신의 공부내용을 집대성한 책을 펴냈다. 제목은 ‘은퇴자의 예술 따라가기(바른북스)’. 글과 사진은 물론, 편집까지 손수 공을 들였다. 지난달 27일 그를 만났다.

자신의 수채화 작품 ‘페스의 테너리’ 앞에 선 김영균 씨. 모로코의 1000년 도시 페스에서 가본 전통적인 가죽 무두질 공장의 모습이다. 이 작품은 2016년 한국수채화협회 우수상을 받았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30+30+30의 인생,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 30년
은퇴생활을 시작할 무렵, 오랜 의무와 책임에서 해방됐지만 마음은 뒤숭숭했다. 허탈감 상실감 무기력 등이 몰아쳐왔다. 그가 책머리에 쓴 글에 당시 상황이 요약돼 있다.

“사회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그 지위가 어떻든 버틸 수 있는 재간이 있다. 자신의 지위에서 벌어진 이야기, 자신의 처지에서 비롯되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하지만 은퇴 이후에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진다. 기껏해야 과거 얘기가 중심이 된다. 은퇴는 노인을 죽이는 최고의 암살자다.”

그 무렵 신문칼럼에서 본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가 그에게 큰 자극이 됐다. 95세 생일을 맞이한 어른이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얘기다. 63세로 퇴직할 때까지 충실한 인생을 살아온 이 어른은, 은퇴후 삶은 ‘덤’이라 생각하고 그저 고통없이 죽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살았다. 그렇게 덧없고 희망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95세 생일을 맞이한 것이다. 인생의 3분의 1을 비통하게 보내버렸다는 참담함에 이 어른은 그날부터 평소 하고 싶었던 외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10년 뒤 105세가 되어 다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이제 웬만하면 90세까지 사는 시대입니다. 30년을 배우고 익히며 살았고, 30년은 돈벌고 가정 꾸렸지만, 앞의 두 30년보다 더 중요한 게 마지막 30년 아니겠습니까. 전 고민 끝에 예술을 선택했지요.” 자신만의 행복을 찾기 위한 김씨의 여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 예술은 값비싼 취미라는 오해
그는 요즘도 단국대와 동서울대 평생교육원과 수원 서예박물관에 다니며 수채화와 사진, 서예를 연마하고 있다. 관련 협회 회원이면서 개인전과 그룹전, 공모전 등에도 부지런히 참여한다. 2010년부터 모두 합쳐 48회 출품했고 이런저런 상도 받았다. 그를 만난 서울 중구 동성케미컬 서울사무소 라운지에 그의 작품이 한점 걸려 있었다. 모로코에서 본 가죽염색공장을 수채화로 그린 작품인데, 2016년 한국수채화협회 우수상을 받았다고 했다.

-늦깎이 예술가가 되는 데 성공하셨네요.

“은퇴하신 분뿐 아니라 현역이나 젊은 세대도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을 때 창작 활동을 시작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예술은 값비싼 취미가 아니예요. 거창한 지식이 있어야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요. 누구나 배우지 않아도 그림을 그리고 지식이 없어도 예술작품을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 예술가예요. 무언가를 시작하면 무뎌진 자신의 감각을 추스르고 삶과 예술을 새롭게 즐길 수 있어요.”


자신의 작업실에서. 김영균 씨 제공

-시작은 어떻게 하셨나요?

“그림은 성남아트센터에서, 붓글씨는 도서관에서 시작했어요. 사진은 전문가에게 배우기도 했습니다. 무언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주민센터건 평생교육원이건 아트센터건 배울 곳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실천에 옮기는 게 중요합니다.”

-예술은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아내 말이 친구들에게 책을 주면 ‘너희 정말 잘 사나보네’란 반응이 돌아온대요. 집 한 채에 연금뿐인데 말이죠. 자랑질하는 것처럼 느껴지나 봐요. 하지만 행복은 물질적 측면에서 찾다보면 한이 없어요. 아무리 잘 먹는다해도 하루 세끼 이상 먹을 수 있나요. 행복을 느끼는 주체는 자신입니다. 스스로 행복을 어떻게 찾느냐가 중요하지요. 돈을 더 벌지 못하더라도 예술을 즐기고 따라가면서 여유로운 마음을 갖는 것, 그게 더 행복한 것 아니냐. 이게 제 결론입니다. 제 아내도 같은 의견이고요.”

그는 금융계에서 오래 일했지만 재테크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했다.

“제가 IMF 외환위기 때 금융감독원에서 구조조정 책임을 맡고 있었어요. 돈벌이에 신경 썼다가는 아마 감옥에 갔을 거예요. 일체 관심을 끊는 게 속이 편했죠.”

○ ‘노인과 바다’의 노인처럼
그는 예술을 하는 자세로 ‘여조삭비(如鳥數飛)’를 수시로 강조했다.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논어 학이(學而)에 나온다.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히는 자세를 말한다.

특히 노년에 새로운 시도를 할 때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권한다. “노년기의 기억체계는 밀려드는 새 지식을 쌓기보다 살아온 궤적과 경험치에 대한 가중치를 증가시키는 연륜이 늘죠. 예술하기에 적당한 뇌입니다.”

이렇게 여조삭비의 매일을 보내며 정진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기쁨과 마주하게 된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 아시죠. 84일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85일째 되는 날 드디어 큰 청새치를 낚은 기쁨. 그런 투쟁과 같은 기쁨을 매일 느낄 수 있어요.”

저서 ‘은퇴자의 예술따라가기’는 한자의 기원과 서체부터 중국 문화예술 탐방기, 한국화와 서양화 감상, 미술사의 흐름, 사진과 회화 등 동서양과 과거 현대를 종횡무진 넘나든다. 무엇보다 그가 직접 다녀온 세계 각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얻은 생생한 사진과 정보로 가득하다. 그는 기대는 안 하지만 혹시라도 책에서 인세가 들어오면 안나의 집에 갖다주려 한다고 말한다. 김하중 신부가 운영하는 성남의 노숙인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과의 관계는 8년여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그는 매달 회비를 내고 가끔 노력봉사를 하러 간다.


은퇴자의 예술 따라가기 표지. 자비출판으로 533쪽에 이르는 두께에 글과 사진은 물론, 편집까지 그가 손수 공을 들였다. 김영균 씨 제공


최근 일출을 찍은 사진작품을 성남 노숙인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에 기증했다. 노숙인들이 해가 뜨는 기운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김하중 안나의 집 신부(왼쪽)는 작품을 보더니 “이 속에 하느님이 계시다”고 했다고 한다. 김영균 씨 제공



○ “남과 비교하지 말자”
난생처음 작품으로 상을 받은 건 2008년 6.25전쟁 기념 공모전에 출품한 수채화였다. ‘지울수 없는 추억 개성’이란 제목에 폭격맞은 장난감을 생각하며 그린 상상화였다. ‘동행(同行)’을 금문으로 쓴 글씨도 상을 받았다. 2016년 수채화협회 우수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남과 비교하지 말자”고 마음 먹었다.


2008년 그린 수채화 ‘지울수 없는 추억 개성’. 폭격 맞은 장난감을 생각하며 그린 상상화다. 이 그림은 현재 금감원에 걸려 있다고 한다. 김영균 씨 제공

“인정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지고 나면 자기만족이 더 중요해집니다. 큰 상을 받고 나니 욕심이 생기려 하더군요. 그때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스스로 즐기려 하는 건데, 욕심 부리지 말자고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30년 금융맨이 30년 예술가로 살기에 도전하는 셈인데요, 앞으로 계획은.

“날개짓을 계속할 뿐입니다. 가능한 제가 가진 것들을 나누면서 하고 싶어요. 지난해 용인시 도서관사업소에 ‘휴먼북(지식과 경험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자)’으로 등록했는데, 코로나 상황이라 그 또한 여의치 않네요. 미국에 그랜마 모지스(1860 ~1961)라는 할머니 화가가 있었습니다. 평생 농부의 아내로 살았는데 나이 70이 다 되어 건강상 움직이기 곤란해지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작품활동을 했어요. 산골 교회 마을 등 토속적인 풍경을 그렸는데 작품은 주로 연말연시 카드그림에 실렸죠. 저도 그런 할머니처럼, 소박하게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일하며 스스로 행복을 찾을 뿐입니다.”

오래 살아본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는 60세에서 75세라고. 백수를 누리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서구나 일본의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김영균 씨의 이 시기는 예술로 더욱 빛이 났던 듯하다.


2018년 대한민국 서예대전 특선으로 뽑힌 작품 동행(同行). 금문(金文)체로 썼다. 작품 아래쪽에는 공자의 가어(家語)에 나오는 경구를 적었다.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과의 동행은 안개 속을 걸어 물기가 옷에 배어들 듯 인품이 스며들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동행은 측간에 있어 악취가 스며들게 되는 것과 같다’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김영균 씨 제공




서영아 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