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 ‘노란 천막’에선 200만 원 명품 패딩이 단돈 10만 원?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동대문 짝퉁시장을 찾고 있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국내에서 명품 ‘짝퉁’(모조품·가품)이 한창 이슈이던 1월 말, 오후 10시가 넘어 찾은 서울 중구 ‘동대문 짝퉁시장’의 한 상인에게 “몇 시까지 영업하느냐”고 물으니 돌아온 답이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로 오후 9시 이후에는 외식도 어려워 모두 집으로 간 줄 알았던 사람들이 여기에 다 모인 것처럼 거리는 ‘불야성’ 그 자체였다. 운영 시간이나 휴무일도 파는 사람 마음대로인 불법 좌판이지만, 길거리 음식을 파는 한 상인은 “여기에 휴일이 어디 있나. 코로나19 사태로 가뜩이나 오는 사람이 줄어서 매일 연다”고 말했다.
젊은 층 핫 플레이스 된 짝퉁시장
한 여성이 매대에 놓인 생로랑 가품 클러치 가격을 물었다. 상인은 “이건 18만 원짜리인데, 이보다 잘 만든 건 25만 원. 우리 집에서 파는 건 25만 원짜리. 만져보면 마감이 다르고 가죽 재질도 달라”라고 말했다. 블랙 퀼티드 가죽 소재 ‘모노그램 태블릿 파우치’의 가품으로 정품 정가는 118만 원이지만, 클러치 안에 작은 파우치가 들어 있는 것까지 정품과 동일한 구성이었다.
인플루언서 짝퉁 논란
짝퉁 이슈로 논란이 된 유튜버 프리지아(본명 송지아). 동아DB
짝퉁 이슈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다시 화제가 된 건 유튜버 ‘프리지아’(본명 송지아)의 짝퉁 논란 때문이다. 혹자는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음주운전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유독 프리지아에게만 난리냐”라고 말한다. 문제는 당초 프리지아의 콘셉트가 최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명품 쇼핑을 쉽게 하는 ‘영 앤드 리치’ 금수저였고, 그 이미지 덕에 큰 인기를 누렸다는 데 있다. 최근 출연한 넷플릭스 웹예능 ‘솔로지옥’이나 유튜브 하울(구매한 물건을 품평하는 내용을 담은 영상) 콘텐츠에서 선보인 제품이 대부분 ‘가짜’였다는 데 대한 반동이 컸다. 여기에 프리지아가 직접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지면서 상표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는 점이 논란을 부추겼다.
예쁘다고 덥석 사도 될까
서울 동대문 일대에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짝퉁 제품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단속 뜨면 접는다더라” “압수당할까 봐 물건은 차에 놓고 매대에는 거의 안 올려둔다더라” 등 새빛시장을 찾기 전 들은 ‘썰’은 많았지만 현장에서는 아무도 단속을 두려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한쪽에서 담배를 피우던 상인들은 “저번에 불법이라고 방송사에서 잔뜩 찍어 가더니만 오히려 홍보만 됐지 뭐야”라며 웃었다.
동대문 시장은 중구청 관할이다. 단속을 안 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기자가 전화했을 때도 담당자들은 단속 업무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다만 다른 지역에 비해 불법 점포가 몰려 있는 편이고 담당 인원은 3명뿐이라 “여력이 없다”는 소리가 나온다. 기자가 간 날 장사 중인 천막만 100여 개에 달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확진자 발생을 우려해 현장 단속 인원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상태”라며 “200여 개 가까운 불법 점포를 적은 인원으로 단속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짝퉁은 온라인에서도 활개 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이 특허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온라인 불법 위조상품 적발 건수는 총 12만6542건이었다. 대부분 해외 명품 브랜드 가품이었다. 상표별로는 구찌(1만6202건), 루이비통(1만4730건), 샤넬(1만3257건)이 많았고 품목별로는 가방(4만939건), 의류(3만3157건), 신발(1만9075건) 등이 많았다. 정품 가액 기준으로 보면 가방이 4549억 원, 시계가 1944억 원, 의류가 1096억 원어치였다.
짝퉁 사는 건 범죄 동조 행위
특허청의 위조상품 단속 건수 중 형사 입건까지 가는 건 매년 300~400명대였으나 2020년에는 617명으로 2019년 대비 64.1% 늘었다. 특허청은 지난해부터 소위 짝퉁 단속 위주인 기존 산업재산조사과를 기술경찰과와 상표경찰과, 부정경쟁조사팀으로 확대하고 기술수사 인력을 보강했다. 위조상품 유통량이 늘어난 만큼 신고 건수도 늘었다. 특허청에 따르면 위조상품 신고 및 제보 건수는 2018년 5557건에서 2019년 6864건으로 증가했으며 2020년에는 1만4319건으로 늘었다.
일반인이 짝퉁을 사는 건 일단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파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엄연히 ‘불법’이다. 상표법 제108조와 제230조 등에 관련 내용이 있다. 타인의 등록상표와 동일한 상표를 그 지정상품과 유사한 상품에 사용하거나, 타인의 등록상표와 유사한 상표를 그 지정상품과 동일 또는 유사한 상품에 사용하는 행위를 한 경우 7년 이하 징역형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민사상 손해배상책임 또한 별도로 져야 한다. 결국 짝퉁을 사는 건 이와 같은 불법행위에 동조하는 셈이다.
김학영 법률사무소 더엘 변호사는 “짝퉁 이슈는 필연적으로 상표법 문제를 수반한다”며 “상표법에서는 짝퉁을 만드는 행위 외에 짝퉁 상표 또는 제품을 유통하거나 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를 제작·판매하는 행위도 상표권 침해로 본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개인이 짝퉁을 사서 쓰는 건 도덕적·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을지언정 법적 책임은 지지 않는다. 그러나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짝퉁을 쓰는 건 조금 다른데, 광고주와 계약서상에 품위 유지 의무 조항이 있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솔로지옥’처럼 많은 사람이 보는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가품을 노출한 걸 두고는 “해당 명품 브랜드가 이미지 훼손을 이유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손해배상 금액을 특정하거나 손해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어 광고주 또는 소속사가 프리지아에게 계약 책임을 묻는 게 최선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짝퉁 근절에 해당 브랜드나 기관이 아니어도 기여할 방법이 있다. 특허청이 운영하는 ‘위조상품 신고포상금 제도’가 그것이다. 특허청에 등록됐거나 국내에 널리 알려진 타인의 상표를 도용해 위조상품을 제조하는 자 또는 그 제품을 유통하는 자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특허청이 위반자를 단속하는 데 기여한 신고 중에서 적발 금액이 10억 원 이상이고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된 사건의 신고자라면 포상금 지급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포상금을 기대하고 활동하는 ‘짭파라치’도 생겨났다.
단, 이미 조사·수사 중이거나 조치한 사항을 신고한 경우, 온라인 거래상 증거물품 또는 증거물품 구입 내역을 제출하지 않은 경우는 포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자세한 내용은 ‘산업재산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 신고센터’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25호에 실렸습니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