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
위 사진 설명의 맨 마지막 문장은 처음엔 이랬습니다.
“초록으로 남을지, 빨강으로 변할지 결정하세요!”
#2
‘양념 반 프라이드 반’ ‘짬짜면’….
한 끼 메뉴 정도야 웃어넘기면 그만이지만, 결정 장애가 있으면 중요한 기로의 순간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결정을 선뜻 못하는 이유는 두가지겠죠. 무엇이 가장 올바른(합리적인) 선택일까? 어떤 결정을 해야 후회가 없을까? 후회 없는 결정은 없으며 완벽하게 합리적인 선택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만요.
#3
때로는 반반메뉴 주문하듯 이것저것 다 해보겠다고 결심할 때도 있습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며 쿨한 척 하지만 실상은 선택을 미루고 주저하고 있는 것이죠. 모든 걸 다 하겠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사진도 비슷합니다. 눈앞에 벌어진 모든 풍경과 상황을 다 담아보겠다고 하면, 메시지가 불분명한 맥없는 사진만 찍게 됩니다. 부각 시킬 주제를 선택해야 합니다.
사진기자들 중에는 선택 장애가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현장에서 셔터를 누르는 순간순간 촬영 대상과 프레임, 앵글을 반복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죠. 물론 적확한 결정을 할 때보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습니다.ㅠㅠ 현장에서 자주 ‘물’을 먹는다는 불편한 진실이 증거입니다. 주식 투자 등 재테크에서도 결정을 너무 성급하게 해서 손해 보는 일도 흔합니다. 빠른 결정은 사진기자의 직업병입니다.
축구 같은 구기 종목 선수들도 결정 장애가 드물다고 합니다. 공이 있거나 없거나 순간적으로 모든 동작을 결정하는 행동을 초 단위로 지속하니까요. 선택장애도 일상의 훈련과 경험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평소 선택장애가 걱정인 분이시라면, 자잘한 결정부터 빠르게 하는 연습을 해보는 게 어떨까요? 축구 선수가 잘못된 선택 때문에 질까 두려워 아예 결정을 안 하면…그 경기는 무조건 그냥 집니다.
#4
개인적인 선택장애는 한 사람의 문제로 끝이지만, 집단의 결정 장애는 사회적인 문제가 됩니다.
주인이나 매니저가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나서면 손님들끼리 싸우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처음 다툼이 일어난 순간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해 문제의 손님을 내보내야 합니다. 책임자가 쭈뼛거리며 결정을 회피하면 결국 의사결정의 문제가 손님들에게 넘어가고, 결국 싸움만 나게 마련입니다. 집단의 결정 장애는 집단의 문제처럼 보여도 실상은 책임자의 우유부단함에 원인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들끼리 분쟁이 격화되는 사건의 뒤를 들여다보면,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관료나 정치인이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눈치를 보며 결정을 미루고 화해나 조정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판단하겠다”며 설명회, 공청회, 토론회만 반복적으로 엽니다(아…이런 취재현장이 제일 괴롭습니다). 결정에 책임을 지기 싫으니 시간 끌면서 주민들끼리 알아서 협의하라며 판을 깔아주는 것이지요. 결국 감정의 골만 깊어지고 폭력사태는 물론 법원 소송까지 가는 등 상황은 더 악화됩니다.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합니다. 문제 해결에 주민이 직접 나서야 하니 스트레스를 받아 싸움만 하는 것이죠. 공적 위치에 계신 분들에겐 의사 결정을 책임지고 설득과 조정으로 마무리까지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5
지난 달 20일 외신 뉴스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한 여객기 승객이 마스크 쓰기를 거부해 기장이 이륙 한 시간 만에 회항을 했다는 뉴스였습니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영국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였고요. 그 승객은 회항 즉시 경찰에 체포됐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나머지 승객 모두 다른 항공편으로 옮겨야 했다고 하는데요, 제가 만약 이 항공기 탑승객이었다면 어땠을지 잠시 상상해 봤습니다. 투덜대겠지만, 기장의 과감한 의사결정과 실행력에 마음 한편으로는 찬사를 보내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