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아파트 전경. 동아일보 DB
주택 경기가 급속하게 꺼지고 있다. 어제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서울 아파트값이 20개월 만에 하락한 데 이어 31일에는 수도권 아파트값이 30개월 만에 하락세를 보였다. 여기에 작년 말 전국 미분양 주택은 전달보다 25.7% 증가했고 올 1월 수도권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 지난해 평균치의 절반에 그쳤다.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의 대출 규제 강화 이후 집값 상승폭이 둔화한 데 이어 부동산 하락기가 본격 도래한 것이다.
부동산 거품이 갑자기 꺼지면 빚으로 집을 산 사람들은 타격을 입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보고서에서 지방의 3억 원 이하 주택을 산 4가구 중 1가구꼴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평균 60%를 넘는다고 진단했다. 향후 적지 않은 대출에서 부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집값 하락에 따른 충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여야 대선 후보들은 거꾸로 대출 규제를 확 풀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달 청년 등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에 대해 LTV 규제를 90%까지 풀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앞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해 8월 신혼부부와 청년 무주택자 대상 LTV를 80%로 올리는 공약을 내놓았다. 3일 TV토론에서 이 후보는 LTV 90%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완화까지 거론했고 윤 후보는 기존 LTV 완화 입장을 고수했다.
청년과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해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모든 정권의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가계부채는 작년 말 기준 1060조 원에 이른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한국의 가계부채 수준이 은행권의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위험 신호가 크게 울리는데도 대출 완화를 주장하는 공약은 무책임할 뿐 아니라 가계부채 리스크를 줄이려는 정부 정책과도 정면충돌한다. 대선 후보들은 지금 눈앞에 닥친 위험 요인인 ‘회색코뿔소’를 외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