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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32m 우물에 빠진 다섯살 라얀, 모로코 국민들 무사생환 기도했는데…[사람, 세계]

입력 | 2022-02-07 03:00:00

직경 45cm 우물 근처서 놀다 빠져
토사 붕괴 위험에 구조대원들 사투, 시민들도 직접 흙 파고 구조 나서
텐트노숙 응원에 온라인 생중계도… 나흘만에 아이 꺼냈지만 끝내 숨져




라얀 오람이 빠진 우물 입구. 45cm의 좁은 지름으로 구조대원의 진입이 불가능했다. 사진 출처 트위터·타모로트=AP 뉴시스 

5일 북아프리카에 있는 모로코 북부 타모로트의 한 산촌마을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온 수천 명이 한 우물 주변에 모여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 사는 5세 어린이 라얀 오람이 우물에 빠진 지 5일째 되던 날이었다.

라얀이 갇힌 우물의 깊이는 32m. 우물 입구의 직경이 45cm에 불과해 구조대원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 구멍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계속 좁아져 직경이 25cm 정도였다. 라얀은 이 좁은 틈으로 애타게 구조의 손길을 기다렸다.

라얀 오람(5)이 빠진 우물은 구멍이 너무 좋아 진입이 불가능했다. 구조대는 굴착기로 우물 옆 땅을 파서 라얀이 갇혀있는 32m 깊이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토사가 붕괴될까봐 작업은 달팽이 속도로 진행됐다.

라얀은 1일 아버지가 보수작업을 하던 마른 우물 근처에서 놀다가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 사고 직후 구조대는 굴착기로 우물 옆 땅을 파서 라얀이 있는 곳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1분 1초가 급했지만 진동으로 토사가 붕괴되면 라얀을 덮칠 수 있어 ‘달팽이 속도’로 진행됐다. 4일이 걸려 32m 깊이까지 내려갔고, 여기서 다시 수평으로 라얀이 있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길을 뚫었다.

밤낮 없이 구조 작업을 이어가는 동안 구조대는 우물 아래로 집어넣은 카메라를 통해 라얀의 상태를 확인했다. 틈틈이 산소와 물, 음식을 밧줄에 매달아 내려보냈다. 라얀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우물 바닥에 기댄 채 숨을 가쁘게 쉬었다.

우물 밖에선 많은 시민들이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며 구조 소식을 기다렸다. 모로코 남부에서 급하게 올라온 한 남성은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우물로 이어지는 굴을 100시간 넘게 손으로 팠다. 한 15세 소년은 “제가 라얀보다 열 살이 많아요. 제가 형인데 어떻게 동생을 돕지 않을 수 있겠어요”라며 직접 우물 안으로 들어가려다 너무 좁아 포기했다.

구조작업이 이어진 5일 동안 우물 밖에선 전국 각지에서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어 라얀의 무사 귀환을 기도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라얀 구하기(Save Rayan)’ 운동이 번졌다. 구출 작업 상황이 지역 언론과 유튜브 등을 통해 생중계됐다. 한 누리꾼은 “이틀 동안 한숨도 못 잤다. 라얀이 안전히 구출되기를 계속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과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각국 대사관도 라얀의 생환을 기원하는 글을 올렸다. 스웨덴의 한 건설기계 업체는 굴착 작업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5일 오후 라얀이 갇힌 곳까지 불과 80cm를 남겨두고 있었다. 구조대는 토사가 무너지지 않도록 시간당 20cm씩 굴을 파 이날 오후 9시 반경 라얀을 우물에서 빼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라얀은 병원으로 향하던 구조 헬기 안에서 끝내 숨을 거뒀다.

라얀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무함마드 6세 모로코 국왕은 라얀의 부모에게 전화로 애도를 표했다. 구조 현장에 남아 있던 시민 메흐디 이드리시 씨(32)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결말은 비극적이지만 라얀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줬다”고 말했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