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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포졸이 순찰하던 ‘순라길’… 노포-펍 어우러져 이색 정취

입력 | 2022-02-07 03:00:00

[메트로 스트리트]〈1〉과거-현재 공존하는 ‘서순라길’



6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종묘 돌담길을 따라 난 서순라길을 걷고 있다. 순라길은 조선시대 순라군이 도성을 순찰할 때 다녔던 길이다. 이 길은 노포와 최근 생겨난 펍 및 카페 등이 어우러지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조선시대 한양에는 여러 길이 있었다. 넓고 잘 닦인 길은 왕과 양반들의 몫이었고 백성들은 울퉁불퉁한 흙길을 걸었다.

날이 저물면 도성 부근에 또 다른 길이 생겼다. 늦은 밤, 도성을 지키는 군인들의 순찰로인 ‘순라길’이다. 통행이 금지된 심야시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순라군은 이 길을 따라 도성의 안전을 살폈다.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길

창덕궁 돈화문에서 종묘로 이어지는 순라길에서 요즘 가장 주목받는 구간은 ‘서순라길’이다. 순라군이 머무는 순라청 서쪽에 위치해 붙여진 이름이다. 종로3가역 11번 출구로 나와 종묘를 향해 걷다 서쪽 담장 쪽으로 빠지면 800m가량의 서순라길을 만날 수 있다. 인파로 가득 찬 도심 한복판에서 마주한 서순라길은 시민들을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색다른 세계로 안내한다.

길의 시작부터 끄트머리까지 이어지는 종묘의 하얀 돌담과 그 위로 뻗은 나무들은 걸음을 여러 번 멈추게 한다. 돌담 반대편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수십 년 전부터 길을 지켜온 노포와 갓 생겨난 펍과 카페가 어우러져 이색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1970∼1990년대 귀금속 산업 메카답게 공방들도 눈에 띈다. 오래된 공방도 있지만 이제 막 문을 연 유니크한 외관 디자인의 주얼리숍도 많다. 종로구 관계자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최근 익선동 등에서 이곳으로 이전해온 공방이 여럿 있다”고 설명했다.

어느 정도 길이 익숙해질 때 즈음 곳곳에 난 좁은 샛길로 방향을 틀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중간중간 보이는 골목길을 따라가면 낡은 가옥과 함께 종로 주민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건축자산’이라는 공식 팻말이 붙어 있을 정도로 예술적·역사적 가치를 지닌 주택이 많다.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였던 오세창 선생의 작품 활동 터 등 역사 명소도 만날 수 있다.

서순라길은 평일도 차량 통행이 많지 않지만 주말에는 ‘차 없는 거리’로 운영된다. 서순라길에서 율곡로 터널을 통과하면 반대편 ‘동순라길’로 갈 수 있다. 서순라길에 비해 아직 찾는 사람이 적어 좀 더 한가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 느린 걸음으로 만끽
서순라길을 찾는 발길이 늘면서 길가에 다양한 점포가 들어서는 중이다. 빈티지한 분위기의 카페와 식당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지금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곳도 있어 향후 거리 풍경이 어떻게 달라질지 벌써부터 기대를 모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줄긴 했지만, 저녁이면 돌담을 보며 술 한잔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관심이 있다면 주얼리 공예를 직접 체험하고 관련 창업 상담도 받을 수 있는 서울주얼리지원센터도 둘러볼 만하다.

종묘의 경관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변 건물 높이를 제한한 것도 이 거리를 특별한 장소로 만들어준다. 최근에 생긴 식당이 많지만 20년 이상 이곳을 지켜온 빛바랜 간판의 터줏대감들도 곳곳에 숨어 있으니 미리 찾아보고 가면 좋다.

서순라길은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살펴야 그 매력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2.2km의 순라길 전체를 돌아볼 것을 추천한다. 현재 율곡로 창경궁 앞 도로구조개선공사가 진행 중인데 공사가 마무리되면 순라길은 총 2.8km로 확장된다. 조금 더 여유가 있는 날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까지 둘러보면 과거에서 현재로 충만한 하루를 온전히 즐길 수 있겠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