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트리트]〈1〉과거-현재 공존하는 ‘서순라길’
6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종묘 돌담길을 따라 난 서순라길을 걷고 있다. 순라길은 조선시대 순라군이 도성을 순찰할 때 다녔던 길이다. 이 길은 노포와 최근 생겨난 펍 및 카페 등이 어우러지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조선시대 한양에는 여러 길이 있었다. 넓고 잘 닦인 길은 왕과 양반들의 몫이었고 백성들은 울퉁불퉁한 흙길을 걸었다.
날이 저물면 도성 부근에 또 다른 길이 생겼다. 늦은 밤, 도성을 지키는 군인들의 순찰로인 ‘순라길’이다. 통행이 금지된 심야시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순라군은 이 길을 따라 도성의 안전을 살폈다.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길
길의 시작부터 끄트머리까지 이어지는 종묘의 하얀 돌담과 그 위로 뻗은 나무들은 걸음을 여러 번 멈추게 한다. 돌담 반대편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수십 년 전부터 길을 지켜온 노포와 갓 생겨난 펍과 카페가 어우러져 이색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어느 정도 길이 익숙해질 때 즈음 곳곳에 난 좁은 샛길로 방향을 틀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중간중간 보이는 골목길을 따라가면 낡은 가옥과 함께 종로 주민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건축자산’이라는 공식 팻말이 붙어 있을 정도로 예술적·역사적 가치를 지닌 주택이 많다.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였던 오세창 선생의 작품 활동 터 등 역사 명소도 만날 수 있다.
서순라길은 평일도 차량 통행이 많지 않지만 주말에는 ‘차 없는 거리’로 운영된다. 서순라길에서 율곡로 터널을 통과하면 반대편 ‘동순라길’로 갈 수 있다. 서순라길에 비해 아직 찾는 사람이 적어 좀 더 한가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 느린 걸음으로 만끽
서순라길을 찾는 발길이 늘면서 길가에 다양한 점포가 들어서는 중이다. 빈티지한 분위기의 카페와 식당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지금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곳도 있어 향후 거리 풍경이 어떻게 달라질지 벌써부터 기대를 모은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줄긴 했지만, 저녁이면 돌담을 보며 술 한잔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관심이 있다면 주얼리 공예를 직접 체험하고 관련 창업 상담도 받을 수 있는 서울주얼리지원센터도 둘러볼 만하다.
종묘의 경관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변 건물 높이를 제한한 것도 이 거리를 특별한 장소로 만들어준다. 최근에 생긴 식당이 많지만 20년 이상 이곳을 지켜온 빛바랜 간판의 터줏대감들도 곳곳에 숨어 있으니 미리 찾아보고 가면 좋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