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 과학기지서 1년간 근무한 김용수 전문의 ‘남극일기’ 펴내 “혹한 경험 후 행복의 의미 깨달아”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 뒤 설원에 서 있는 김용수 외과 전문의. 김용수 씨 제공
평생 의사로 일하다 환갑을 맞았다. 전문직이라 은퇴는 없지만 삶이 허했다. 그때 우연히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1년을 근무할 월동연구대 의사를 뽑는다는 공고가 눈에 띄었다. 30, 40대 건장한 이들이 근무하는 혹한의 근무지였다. 이 나이에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 미지의 땅을 개척한다는 도전정신으로 남극에서 홀로 대원들의 건강을 책임졌다. 최근 에세이 ‘남극일기’(미다스북스·사진)를 펴낸 김용수 외과전문의(68) 이야기다.
김 전문의는 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2013년 우연히 대한민국 쇄빙선 아라온호 선의로 승선해 3개월간 겨울 남극바다를 항해했지만 1년을 머무는 장보고 과학기지 근무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더 늦으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 월동대원 의사로 일했다”고 했다.
남극에 찾아오는 극야 기간에는 햇빛을 보지 못해 불면증과 우울증에 걸릴 정도다. 그만큼 만만치 않은 곳이다.
장보고 과학기지 의사는 월동대원 16명과 연구와 보급을 위해 기지를 찾는 연구자 수백 명의 건강을 돌본다. 홀로 근무하며 환자를 진료하고 마취, 수술 집도, 간호를 도맡아 한다. 위중한 응급환자가 생기더라도 바다가 꽁꽁 얼어붙으면 쇄빙선이 다니지 못하는 등 이송할 교통수단마저 없다. 의사가 기지 내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수술할 수밖에 없다.
급박한 순간도 종종 생겼다. 2016년 1월 대원 한 명이 배가 아프다며 찾아왔다. 초음파 검사를 해보니 대장 벽에 염증이 생기는 게실염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자칫 생명이 위험할 수 있었지만 환자를 1만3000km 떨어진 뉴질랜드로 이송하는 건 쉽지 않은 일. 그는 “사흘간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수술 없이 환자를 치료했다”며 “환자는 결국 10일 후 건강을 회복해 이송을 막았다”고 했다.
그는 영국 작가 데이비드 데이가 쓴 남극탐험 역사서 ‘남극대륙’(미다스북스)을 최근 번역했다.
“700쪽이 넘는 책을 번역한 건 남극에 대한 애정 때문이죠. 아직도 남극의 공기가 어땠는지, 블리자드가 얼마나 거셌는지, 밤하늘과 오로라가 얼마나 황홀했는지, 펭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기억납니다. 혹한을 경험한 뒤 삶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어요.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면 늙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