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 북한 자강도 무평리에 전개된 이동식발사차량(TEL)에서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 발사되고 있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통신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연초부터 휘몰아친 북한의 ‘미사일 파상공세’가 심상치 않다.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극초음속미사일과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등 대남 타격무기의 ‘연쇄도발’에 이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모라토리엄(중단) 파기 위협과 4년 4개월 만의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까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사태가 이런데도 청와대와 정부는 ‘도발’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군은 북한 미사일을 탐지·요격할 수 있다는 입장만 반복하는 형국이다. 임기 말 대선(大選) 정국에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동시에 안보 불안감을 달래려는 고육지책으로 읽힌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협상용 무력시위를 재개한 것이라며 이럴수록 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확 달라진 북한의 도발 수단과 양상을 도외시한 순진한 판단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핵을 싣고 한미 요격망을 돌파할 다양한 전략무기를 개발 배치하는 것이 북한의 최대 관심사이자 최종 목표라는 ‘팩트(fact)’를 간과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한미가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열린 안보협의회의(SCM)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대응해 ‘작계 5015’ 수정에 합의한 이면에는 이 같은 우려가 깔려 있다. 2만8000여 명의 주한미군과 그 가족이 북한의 ‘핵인질’이 되는 상황은 본토에 대한 핵위협만큼이나 미국을 곤혹스럽게 할 것이다. 한반도 유사시 미 전략자산 전개 등 대북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조치를 머뭇거리는 사태가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북핵 대응의 요체는 어떤 경우에도 한국을 핵으로 공격할 수 없도록 북한 지휘부를 강제하는 것이다. 요격 등 방어 대책도 중요하지만 핵을 쏘는 순간 최고 수뇌부를 정점으로 한 북한 지배체제를 소멸시킬 수 있는 공세적 역량과 전략을 대대적으로 보강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이야말로 ‘전략사령부’의 창설을 서둘러야 할 때라고 필자는 본다.
각 군의 미사일 전력 등 주요 전략무기를 총괄 운용하는 전략사는 다방면에서 효과적인 북핵 억지 수단이 될 수 있다. 전략사는 분초를 다투는 북한의 재래식 및 핵 도발에 맞서 그 원점과 지원·지휘세력에 대한 일사불란하고 즉응적인 대량보복을 통해 ‘작전 반응시간’을 크게 단축시키고 반격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다. 기습효과가 기대 이하이고, 역습의 피해가 더 크다고 판단된다면 북한은 ‘핵도발’을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핵이 없는 우리 군으로선 첨단 재래식 무기의 중복투자를 막고,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끌어올려 북한의 핵을 저지하는 비책을 갖게 되는 셈이다.
더 나아가 한미 간 전략사의 유기적 협조 체제가 구축될 경우 유사시 미국의 확장억제 조치에 한국도 참여하는 효과를 거둬 북핵 대응력도 배가될 수 있다.
전략사 창설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후보 시절 안보공약으로 제시했고, 현 정부에서 추진되다 2019년 돌연 백지화된 뒤 중장기 검토 과제로 미뤄졌다. 군 안팎에선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등 대북 유화 무드에 발목이 잡혀 흐지부지됐다는 지적이 많다. 북한의 대남·대미 핵무력이 ‘임계점’에 다다른 지금 또다시 오판으로 북핵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