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슈베르트는 한때 베토벤에게 거리를 뒀다. 존경하면서도 스승 살리에리의 의견을 따라 과장이 많고 거친 작곡가라 여겼다. 그러나 1824년 5월 7일의 역사적인 ‘합창’ 교향곡의 초연을 보고 난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어떻게 하면 베토벤처럼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이것은 슈베르트 필생의 과업이 되었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베토벤과는 다른 성정의 사람이었다. 대립시키고, 확장시키고, 마침내 극복하는 베토벤의 스토리텔링은 서정적이고 상냥한 슈베르트와는 맞지 않았다. 이듬해 슈베르트는 가스타인과 그문덴에서 여름을 보내며 새로운 교향곡을 기획했다. 베토벤처럼 위대한 작품을 쓰려면 그와는 다르게 가야 했다. 이 교향곡이 바로 슈베르트의 여덟 번째 ‘대교향곡’(일명 그레이트)이다.
슈베르트의 ‘대교향곡’은 진정으로 슈베르트다운 명작이다. 각 악장의 주제들은 모두 가곡의 왕 슈베르트 특유의 서정적 선율을 품고 있다. 이 작품은 강렬한 대조와 확장하려는 에너지에 기반하는 베토벤 스타일의 교향곡과는 다른 모델로 기획됐다. 베토벤이 드라마틱하다면 슈베르트는 서정적이고 서사적이다. 다시 말해 음악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면서 마치 긴 이야기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베토벤 음악은 목적지가 분명하다. 음향적 효율성과 응축의 에너지, 밀도를 가지고 성큼성큼 나아간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점진적으로 변하면서 끝없이 떠도는 듯한 발걸음과 같다.
이 작품은 슈베르트 사후 10년간 형 페르디난트의 서랍에서 잠자고 있다가 슈만에 의해 재발견됐다. ‘천상의 길이’라는 유명한 말로 이 교향곡의 가치를 표현한 슈만은 총보를 라이프치히로 보냈고, 멘델스존이 초연을 맡았다. 슈베르트는 자신의 재능과 타인의 위대함 모두를 진실하게 들여다볼 줄 알았다. 그 결과 이 작품은 계승이자 창조의 결과물이 됐다.
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