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질환, 장애인정 필요할까 인슐린 분비기능 없는 1형 당뇨병… 평생 혈당-인슐린 등 집중관리 필요 미국-영국-캐나다에선 장애 인정… 정부가 혈당 등 관리 비용 지원 국내선 각 분야 전문가 연구 진행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재현 교수가 췌장의 인슐린 기능이 전혀 없는 1형 당뇨병 질환을 장애로 인정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한국의 장애인 수는 등록환자 기준으로 300만 명에 육박한다. 장애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적지 않다.
―췌장질환과 장애가 잘 연결되지 않는다.
“우선 장애의 개념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장애를 회복이 불가능한 신체 손상과 이로 인한 기능의 약화와 손실, 그리고 기능 손실로 인한 사회적 불편과 불리함이 있는 상태로 정의한다. 췌장질환 중에서도 심각한 질환은 장애의 정의에 부합한다 보고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장애로 인정받을 정도의 췌장질환은 어떤 것이 있나.
“췌장기능이 거의 혹은 완전히 파괴되어 회복이 불가능한 1형 당뇨병이 대표적이다. 1형 당뇨병은 췌장의 인슐린 분비기능이 없어 혈당의 오르내림이 매우 심하고, 평생 집중적인 혈당 측정과 인슐린 투여가 필요하다. 회복될 수 없는 신체 손상과 기능 저하가 발생한 것이다. 이외에 췌장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져 생기는 고인슐린혈증, 췌장 절제술이나 췌장 이식 등도 심각한 장애 범주에 들어간다.”
“1형 당뇨병은 활동 반경이 제한된다. 환자의 연령이 낮을수록 그 문제가 심각해진다. 인슐린 분비가 안 되니 먹는 것이 자유롭지 않고, 혈당 우려로 교내 활동 특히 체육 활동 참여가 제한적이다. 1형 당뇨병을 앓는 아이들은 혈당 변화가 심해서 저혈당이 극심하면 사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잠자는 시간이 위험해서 부모가 번갈아 가며 ‘불침번’을 서기도 한다. 혈당 체크와 인슐린 투여를 자주 해야 하는데 장소를 확보하는 문제도 해결되지 못했다.”
―성인 환자는 어떤가.
“1형 당뇨병을 흔히 소아 당뇨병이라 통칭해 부르지만, 사실 숫자로는 성인 환자가 더 많다. 이 질병은 환자가 성장해서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다만 성인이 되어서는 회사 등에서의 불이익을 걱정해 당뇨병을 숨기고, 건강보험공단에 환자 등록과 지원금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심각한 췌장질환이 장애로 인정된다면 환자는 어떤 혜택을 보게 되나.
“아직 연구 단계여서 속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환자들이 혈당 집중관리를 더 잘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 고용현장에서 차별과 배제를 줄이고, 취업의 문이 넓어질 수 있다. 혈당만 잘 관리하면 1형 당뇨병 등의 질병은 일상생활이나 업무수행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 1형 당뇨병은 성장호르몬 등의 작용으로 성장기나 청년기 환자의 혈당 변화가 더 심하다. 그럴수록 인슐린 용량을 정교하게 조절하고 집중 관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학업과 취업, 사춘기와 스트레스 증가 등이 이를 방해한다. 이 시기는 연속혈당측정기와 이에 연동하는 인슐린 펌프 등을 잘 활용해 적극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국가에서 이 비용을 지원하고 있지만 여전히 환자 부담이 크다. 장애 인정은 이런 면에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장애인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이에게 오히려 낙인이 되지 않을까.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향상되고 있고,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제도와 여건을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하다. 또한 장애 등록은 환자와 보호자의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해외에서 당뇨병이나 췌장질환을 장애로 인정한 사례가 있나.
“미국, 영국 등에서는 인슐린 분비 기능이 없으면 생명에 위험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 장애 인정을 하고 있다. 사회적 보조금과 대출 지원, 고용보험 등 혜택도 있다. 캐나다도 1형 당뇨병 혹은 심한 2형 당뇨병에 대해서 장애 인정을 한다. 혈당치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질병에 의한 잠재적 위험이 있다는 게 그 이유다. 혈당 관리로 발생하는 비용은 정부가 세액공제 등을 통해 사실상 지원해 준다.”
―해당 연구는 누구와 함께 진행하나.
“당뇨병과 같은 췌장 질환은 의사 혼자서 관리할 수 없다. 당뇨병 교육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영양사, 보건교사 등 각계 전문가 협력이 필수다. 이번 연구도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대한당뇨병학회, 대한소아내분비학회의 전문의와 당뇨병 교육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직능 대표, 대한당뇨병연합 등 환자 단체와 환자, 보호자 등이 연구 혹은 자문역으로 참가하고 있다. 올해 안에 결과를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심각한 췌장질환을 가진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린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