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편파판정 비판 나선 진보 정치권 편향된 대중국 인식 바로잡는 계기 삼길
신석호 부국장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한국인들을 분노케 한 다음 해인 2005년.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은 1년 내내 현지의 중국인들을 인터뷰했다. 그렇게 지은 ‘중국이라는 거짓말’(2006년) 서문에 이렇게 썼다. “몇몇 중국인들은 위험을 무릅써 가면서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서구 여러 국가의 정부가 중국 공산당과 결탁하는 것을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종종 물었다. 천안문 학살 사건을 당신들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망각할 수가 있는가?”
소르망은 2년 뒤 베이징 여름올림픽에 대해 예지력 있는 질문을 던졌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의 이데올로기를 인정해 주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한국을 세계에 개방하면서 민주화를 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베를린 올림픽처럼 될 것인가, 아니면 서울 올림픽처럼 될 것인가? 이것은 서구인들의 손에 달려 있다.”
결과는 전자였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미국에 리먼브러더스발 경제위기가 찾아오자 중국 공산당은 미국에 맞짱을 뜨는 국제정치의 패권 추구자로서의 본색을 드러냈다. 2009년 출범한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8년 내내 ‘중국은 경쟁자이자 협력 파트너’라는 애매한 태도로 사실상 중국의 부상을 방조했다.
80년대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 386 운동권 세력들이 중국에 경사된 경위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군부 권위주의 정권의 민주화 세력 탄압, 이를 방관한 ‘제국주의 미국’에 비판적이었던 그들은 ‘반미(反美)’ 이념을 지지해줄 대안 외세로서 중국을 바라보게 되었다. ‘한국 진보·보수의 중국 인식 차이와 이념의 영향’을 연구한 차정미 박사는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2017년)에서 “진보층이 보수층보다 중국에 대한 인식이 우호적인 것은 ‘반공주의’ ‘한미 동맹주의’와 다른 ‘대북 포용정책’과 ‘자주외교’의 구조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예외가 있으니 바로 ‘자주’라는 가치를 건드릴 때다. 차 박사는 2004년 중국의 동북공정 전후 여야 정치인 설문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자주, 주권과 연관된 이슈가 부상할 경우 중국에 대한 (진보층의) 인식도 ‘반미자주’의 연장선이 아닌 ‘자주 vs 친중’의 구도로 전환될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은 이번 겨울올림픽에서도 ‘중국에 앞서면 반칙’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며 편협한 민족주의에 기반한 ‘꼬름한 패권국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아직 80년대를 사는 듯 보수진영을 맹렬히 비난하던 옛 386 정치인들도 중국 비난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자주 vs 친중’의 프레임이 다시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주의 정치학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도 미국도 패권을 추구하는 강대국이다. 미국이 자유주의 이념과 제도, 문화로 ‘자비로운 패권’을 추구하는 척이라도 한다면 중국은 여러 면에서 그 수준이 떨어진다는 현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신석호 부국장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