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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서 예산 분리… 예산처 신설해 국정 총괄기능 맡겨야”[인사이드&인사이트/박진]

입력 | 2022-02-09 03:00:00

기재부 조직 개편 방향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기획재정부 개편 논의에 불을 지폈다. 기재부의 힘을 무소불위라고 지적했던 그는 최근 한 방송 인터뷰에서 “기재부의 예산권을 떼어 청와대나 총리실 직속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 증액 반대에 대해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폭거”라고까지 했다. 기재부의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개편되어야 하는가.

1950년대에는 경제계획과 외자 담당인 부흥부, 재정과 금융 담당인 재무부가 양립했었다. 1961년 군사정부는 재무부에서 예산권을 떼어 부흥부로 넘기면서 경제기획원(EPB)을 창설했다. EPB는 부총리인 수장을 중심으로 경제계획을 수립하고 경제정책을 총괄했다. 재무부는 세제, 금융 등 정책 수단을 가지고 EPB와 협력 내지 경쟁했다. 재무부는 상명하복, EPB는 토론을 중시했다. 문화가 사뭇 달랐던 두 부처는 1994년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됐다. 세제와 예산을 묶어 경제정책의 추진력을 강화한다는 취지였다.》

‘공룡 부처’가 된 재경원은 외환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는 재경원을 세 부처로 나누어 재정경제부(재경부), 기획예산처(예산처), 금융감독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총괄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재경부와 예산처를 현재의 기재부로 통합했다.

○ 예산과 경제가 붙어 있어 문제

여러 개편 역사를 거친 기재부의 개편을 다시 논하려면 먼저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경제, 복지, 교육, 환경 등을 총괄 조정하며 미래를 대비해 국가적 변화를 꾀하는 역할이 절실하다. 경제가 최우선이던 시대엔 경제부총리가 역할을 했으나 이젠 국가 목표가 다원화돼 경제의 시각으로 사회 부처까지 총괄하기 어렵다.

국가개혁 추진 주체로서 국무총리실은 힘이 없고 대통령실은 개혁에 부담을 느낀다. 우리에겐 국정 총괄 및 국가 변화 주도 조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이 기재부 개편의 목표가 돼야 한다.

기재부는 국 단위 조직이 30개에 달하기 때문에 권한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는 공무원이 ‘안 됩니다’라고 할 때 그 취지를 구분해야 한다. 기득권 수호를 위한 저항은 제압해야 하지만 소신은 경청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인의 ‘변화 지향’과 공무원의 ‘안정 지향’이 조화를 이룬다.

문제는 예산 기능이 경제정책 기능과 붙어 있다는 점이다. 예산은 국정 전반의 자원 배분을 책임지는 총괄 조정 기능을 한다. 예산 기능과 경제정책 기능이 붙어 있으면 예산의 시야가 경제로 좁아진다. ‘국정 총괄’ 기능을 해야 할 예산이 ‘경제 총괄’ 수단으로 전락한다.

예산 기능이 경제정책 기능과 함께 있으면 단기 경제 성과에 치중하게 된다. 예컨대 선도국가가 되려면 대학의 연구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성과는 수년 후에 나타난다. 반면 기업에 돈을 주면 당장 고용이 창출된다.

통계청 e-나라지표에 따르면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중 기업으로 가는 비중은 2002년 16%, 2007년 17%였다. 하지만 기재부가 출범한 2008년에 20%로 뛴 후 2020년엔 27%까지 증가했다. 앞으로 국정 총괄을 강화하려면 경제예산 비중을 더 줄여야 하는데 ‘경제’ 부총리 아래에 있는 예산실이 경제예산을 과감하게 줄일 수 있을까.


○ 2008년 이전 예산처, 재경부 체제도 대안

기재부의 경제정책 기능과 예산 기능은 분리돼야 한다. 그래야 예산 기능이 장기적 시야에서 중립적으로 총괄 조정을 할 수 있다.

기재부를 분할할 땐 민간이나 경제 부처 상대 업무는 경제 부처에, 전 부처 상대 업무는 예산 부처에 붙이는 것이 원칙이다. 대체로 2008년 이전의 예산처, 재경부 체제로 돌아가길 권한다. 재경부에는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기능을 이관해야 한다.

경제정책 기능이 예산을 잃으면 정책 조정력이 약화된다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정책 조정이 필요한 문제는 예산을 압력 수단으로 삼아 풀기보다는 논리적 협의로 해결하는 게 맞다.

경제정책 기능과 예산 기능을 분리하면 세입(재경부)과 세출(예산처)이 분리된다는 지적도 있다. 세입과 세출은 상충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다. 부처 간 정보 교환으로 분리에 따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기재부에서 경제정책 기능만 빼내 금융위와 통합해 경제금융부를 만드는 안도 제기된다. 경제정책의 핵심 수단인 세제와 경제정책이 분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재부의 국제금융만 금융위에 붙여 금융부를 만들자는 안도 있다. 이러면 예산과 경제의 동거를 유지하면서 관치금융을 강화할 우려가 있어 좋지 않은 방안이다.

예산처에 행정안전부의 정부관리 기능을 포함해 관리예산처를 만드는 방안도 있다. 미국의 관리예산처(OMB), 김대중 정부 초기의 기획예산위원회와 유사하다. 예산과 조직기능을 연계하면 총괄 조정, 국가 개혁에는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질적 기능의 통합이라는 점이 부담이다.

한편 중앙-지방재정 분리로 인한 비효율 해소를 위해 행안부의 지방재정 기능을 예산처 등으로 이관하는 방안도 나온다. 그러나 지방자치가 성숙할 때까지는 지방분권을 담당하는 행안부가 지방재정을 관장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 예산 편성 권한을 각 부처와 나누자

예산처 체제가 된다면 예산처는 어디에 소속되는 게 좋을까. 답은 총리 역할에 달려 있다. 과도한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와 나누는 것이 좋다면 예산처는 총리실에 두는 것이 맞다.

김대중 정부의 기획예산위원회는 기획예산 기능을 대통령실에 둔 예다.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해 강력한 조정력을 발휘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현안 해결을 맡으면 정권의 부담이 된다. 대통령이 국가개혁을 직접 챙기려는 의지로 예산처를 직속 기관으로 둔다면 이해된다. 예산을 정파적 목적에 의해 좌지우지하겠다는 의도가 아니어야 한다.

예산 편성 절차도 바뀌어야 한다. 먼저 국회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은 정부가 내년도 예산 초안을 잡은 후 8월 말 여당과의 당정 협의를 거쳐 9월 국회에 제출한다. 그보다는 내년도 예산 총액과 부문별 증가율을 미리 정부와 여야가 합의하자. 정부는 그 범위 안에서 예산을 편성하면 된다. 지금은 예산 상한이 없어 사업 간 우선순위를 논의하는 게 무의미한데 이를 활성화하는 의미가 있다. 여야 협치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의 예산 편성도 분권화가 필요하다. 예산처는 시시콜콜한 단위 사업 판정에 얽매이지 말고 각 부처의 편성 자율권을 확대해야 한다. 그 대신 성과 평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래야 예산처의 시각이 넓고 깊어진다. 예산처를 만드는 취지가 국가적 변화를 위한 총괄조정 기능 강화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