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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수에 전극 이식… 하반신 마비 환자들 걸었다

입력 | 2022-02-09 03:00:00

로잔공대-의대 연구진, 3명에 수술
태블릿으로 신경자극기 원격 제어
완전히 감각 잃은 환자 첫 재활 성공
“본질적 치료 아니지만 삶의 질 개선”



보조기에 의지해 걸음을 내딛고 있는 미켈 로카티 씨.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척수 전극 이식 수술 후 보조기를 짚고 걸을 수 있게 됐다. 스위스 로잔공대 제공


이탈리아인 미켈 로카티 씨(30)는 2017년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사고 후 하체를 움직이지 못했고 어떠한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눈이 펑펑 내리던 지난해 12월 그는 스위스 로잔 시내에서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조금씩 걸음을 내디뎠다. 척수를 자극하는 전극 이식 수술을 통해 몸을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그레구아르 쿠르틴 스위스 로잔공대 교수와 조슬린 블로흐 로잔의대 교수가 이끈 연구진은 7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된 남성 세 명의 척수에 전극을 이식한 결과 세 사람 모두 움직일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다. 세 사람은 1년 이상 허리 아래가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다.

이번 이식술은 척추 뒤에서 전기 신호를 주던 기존 방식과 다르게 옆에서 신호를 줘 더 정밀하게 개별 신경을 자극할 수 있게 했다. 더 넓은 범위의 척수로 신호를 보내 몸통과 다리 근육 모두 자극받을 수 있게 했다.

하체에 약간의 감각이 남았던 환자들이 재활에 성공한 적은 있지만 감각을 완전히 잃은 환자들이 다시 걷는 데 성공한 것은 처음이다. 로카티 씨는 “어디든 걸을 수 있다.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수술 성공에 대한 기쁨을 드러냈다. 그는 올여름까지 1km를 걷겠다는 목표도 세웠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무선으로 제어할 수 있는 16개 전극을 환자들의 척추 바로 아래 삽입했다. 환자들이 태블릿 컴퓨터로 자신이 원하는 움직임의 형태를 선택하면 컴퓨터는 그에 맞는 신호를 복부에 이식한 신경자극기로 보낸다. 신경자극기는 척수에 이식한 전극에 전류를 보내 필요한 근육들이 움직일 수 있게 환자들의 신경을 자극한다. 연구진은 마비 환자라고 해도 온전한 척수가 6cm만 있으면 누구나 전극 이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전극 이식이 척수 손상을 본질적으로 치료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보조장치 없이 환자가 스스로 움직이거나 일상의 복잡한 활동을 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쿠르틴 교수는 “이 수술의 목적은 척수 손상 치료가 아니라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심각한 척수 손상을 입은 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