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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싸는 은행원들…빈자리 대체하는 AI 행원들

입력 | 2022-02-10 06:10:00


 지난 4개월간 은행을 떠난 직원 수가 5000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비대면 업무가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은행들이 영업점 수와 인력을 줄이는 등 디지털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에서 지난달에만 희망퇴직으로 총 1800여명이 은행을 떠났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3∼6일 실시한 희망퇴직으로 총 674명이 나갔고, 신한은행은 3∼11일 희망퇴직을 신청한 250명이 은행을 떠났다. 하나은행도 지난달 3~7일 준정년 특별퇴직과 임금피크 특별퇴직 신청을 받아 총 478명이 짐을 쌌고, 우리은행도 지난달 415명이 회사를 떠났다.

범위를 타 은행과 외국계까지 넓혀보면 지난해 말부터 희망퇴직으로 짐을 싼 행원은 5000명을 넘어선다. SC제일은행에서 지난해 10월 말 직원 약 500명이 특별퇴직했고, 국내 소비자금융사업을 접은 한국씨티은행에서도 같은해 11월 2300명이 회사를 희망퇴직했다. NH농협은행에서도 452명이 회사를 떠났다.

희망퇴직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이유는 은행 점포 축소와 디지털 전환 등 비대면 환경이 급물살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은행권의 점포 축소와 금융소외계층 보호를 위한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7281개였던 국내 은행권의 점포수는 지난해 상반기 기준 6326개로 감소했다. 5년도 채 되지 않아 약 1000개의 점포가 사라진 셈이다.

또 은행들이 희망퇴직 연령을 낮춘데다 직급과 나이에 따라 월 평균임금의 최대 36개월치 특별퇴직금을 지급하고, 자녀학자금과 의료비, 재취업·전직지원금, 퇴직 1년 이후 재고용(계약직) 기회 등 후한 추가 조건을 붙인 것도 신청자를 늘어나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렇게 ‘인간 은행원’들이 떠난 자리는 점차 AI 은행원들이 대체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계좌발급이나 계좌이체를 도와주는 AI은행원이 등장했고, 로보어드바이저 투자금액은 이미 1조원을 넘어섰다.

NH농협은행은 지난달 AI 은행원 2명(정이든·이로운)을 정규직원으로 채용하고 근무부서 배치했다. 두 직원은 신규직원 직무교육을 마치고 농협은행 DT전략부 디지털R&D센터 소속으로 배치돼 AI 신사업 추진을 지원하는 업무를 배정받았다. 조직 내 체험관 방문객 응대 등 AI 은행원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어디든 투입될 준비도 마쳤다.

국민은행도 지난달 AI 은행원 키오스크를 영업점에 파일럿 형태로 도입했다. AI 은행원은 지능형 자동화기기(STM), 자동화기기(ATM), 미리작성서비스 등 은행 업무가 가능한 주변기기 사용 방법, 국민은행 상품 소개, 필요 서류나 지점 위치 등을 안내한다. 금융 상식, 날씨, 주변 시설 안내 등 생활 서비스도 제공한다.

신한은행은 AI 은행원의 업무를 고객 대상 인사나 메뉴 검색 등을 넘어 간단한 계좌이체, 증명서 발급 등 금융거래도 가능토록 했다.

아직까지 AI 은행원은 파일럿 형태로 도입되거나 간단한 고객 상담 등 단순 업무를 하는데 그치고 있지만, 향후 기술이 점차 고도화되면 금융권 전반에 전면 도입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해 5월부터 약 3개월간 국내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조사대상 은행들은 아직까지 AI가 사람은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고 직원들의 효율성 개선을 지원하는 역할에 그쳐 AI 도입으로 기존 인력규모가 크게 감축되진 않았지만, 앞으로 기존 인력이 전환되는 추세는 강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금융사들의 AI 활용이 확대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우려도 만만찮다. 지난해 초 출시된 AI 챗봇 ‘이루다’는 성소수자, 여성 차별 발언 등으로 AI 윤리 논란에 휩싸였고, 개인정보 유출 문제까지 불거지며 결국 20일 만에 서비스를 중단한 바 있다. 더욱이 금융권은 신뢰도가 ‘생명’인 만큼, AI 기술에 대한 안전성과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고 사고발생시 책임 소재 구분 등도 보다 명확히 해야 하는 상황이다.

앞서 금융위가 공개한 AI 운영 가이드라인 연구용역 보고서에도 고객 접점 관련 AI 활용에서 주요한 장애요소가 되는 것은 비대면 금융상품 판매시 설명의무와 관련된 불완전판매 등 법적 리스크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 소비자의 금융 독해력이나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 수준을 평가하는 방법이 더욱 고도화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하지만 금융권의 AI 활용에 따른 윤리 원칙과 위험관리 기준을 담은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시행이 요원한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7월 ‘금융분야 AI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당초 연내 시행할 계획이었으나, 아직까지 세부 실무지침을 마련하지 못했다. 가이드라인은 ▲금융산업의 책임성 강조 ▲AI 학습용 데이터의 정확성과 안전성 확보 ▲AI 금융서비스의 투명성·공정성 담보 ▲금융소비자 권리의 엄격한 보장 등 포괄적인 4가지 핵심가치를 담았다

금융권에서도 가이드라인의 구체적인 지침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도 최근 발표한 ‘금융업의 AI 활용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통해 AI가이드라인 등 규제의 불투명성과 함께 AI 도입 또는 활성화를 어렵게 하는 제도적 요인으로 망분리 규제, 금융 IT간 협업을 저해하는 규제 등을 꼽았다.

보고서는 특히 “금융위가 AI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발표 이후에도 보다 구제척인 지침의 필요성이 계속 지적됐다”며 “다만 금융사들은 가이드라인은 분명히 필요하나, 향후 규제로 AI 개발 및 적용에 제한이 우려된다는 의견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또 AI 에 있어 가장 자주 언급되는 윤리적 이슈인 ‘편향성’ 문제의 경우 어떤 데이터셋을 사용할지 등에 따라 영향을 받는데 이를 가이드라인이나 세부지침에 적절하게 반영할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짚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난해 7월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서비스·분야별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현재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서 검토하고 있는 단계로 구체적인 실무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