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한일회담 일본외교문서 상세목록집 1~5권’ 발간
“이승만이 세계의 고아가 되려는 정책을 취하며 세계의 지탄을 받고 머지않아 어쩔 수 없이 은퇴하게 될 것”이란 내용이 나와 있는 대목
1953년 3차 한일회담을 결렬시킨 일본 수석대표 ‘구보타 간이치로(久保田貫一郞)의 망언’은 반공 포로 석방 문제로 악화된 한미관계를 이용해 한일회담을 무기 휴회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된 전략이었음이 확인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은 “1953년 6월 21일 구보타가 작성한 극비 외교문서 ‘일한회담 무기 휴회안’을 분석한 결과 3차 회담 결렬 배경이 된 ‘구보타 망언’은 한일회담을 고의적으로 연기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전략이었다”고 10일 밝혔다. 구보타는 1953년 10월 열린 3차 한일회담에서 “일본의 통치는 한국인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라는 망언을 했고, 이후 한일회담은 약 5년간 중단됐다. 그런데 해당 발언이 나오기 4개월 전 일본 외무성이 “이해득실을 검토한 결과 이번 회담은 무기 휴회해야 한다”는 결론을 이미 도출했다는 사실이 일본 외교문서를 통해 밝혀진 것.
16매 분량의 해당 문서에는 “이승만 정부가 북조선 포로 2만5000명을 독단 석방하는 문제가 일어나 한국은 UN에 반역하는 태도를 취하게 됐다. 이승만이 세계의 고아가 되려는 정책을 취하며 세계의 지탄을 받고 머지않아 어쩔 수 없이 은퇴하게 될 것”이라며 “몰락하려는 이승만과의 회담 속행은 재고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이승만 정부가 1953년 6월 18일 거제수용소에 있던 반공 포로를 석방하며 한·미 관계에 균열이 발생하자, 이를 빌미로 회담을 무기한 연기하는 전략을 세웠다는 분석이다.
조윤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일본 정부는 구보타 망언이 사견(私見)이라고 해명했으나, 결렬의 책임을 한국으로 전가시키면서 회담을 무기한 연기하려는 일본 정부의 전략에 따른 발언이었다”며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처한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 철저하게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