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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도 중국인 싫어하게 만든 ‘빙둔둔 사랑’

입력 | 2022-02-10 14:41:00


“정말 혐오스럽네!(眞惡心!)”

9일 중국 베이징의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메인미디어센터(MMC) 내 기념품 가게 앞에서 이런 불만이 터져 나왔다. 대회 마스코트 ‘빙둔둔(冰墩墩)’ 굿즈(상품)를 사려고 새벽부터 줄을 선 중국인들이 기다리다 지쳐 꺼낸 말이다. 중국에서는 지금 ‘빙둔둔 앓이’에 빠진 중국인이 중국인을 흉보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욕을 먹은 중국인들은 이날 오전 6시부터 가게 앞에 줄을 서 오전 10시 개장 시간까지 약 4시간을 기다린 이들이었다. 이들은 저마다 손에 신문지를 들고 와 바닥에 깔고 앉은 채 졸거나 휴대전화를 쳐다 보면서 지루함을 달랬다. 자기 뒤에 선 사람에게 자리를 맡아 달라 부탁하고 화장실에서 급한 용무를 보고 오는 이도 있었다.

빙둔둔은 중국의 판다를 모티프로 만들었다. 개회 이틀 전인 2일까지만 해도 베이징 ‘폐쇄 루프(閉還)’ 내 기념품 가게에서 인형, 열쇠고리, 배지, 가방 등 다양한 굿즈를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3일 갑자기 빙둔둔 굿즈가 품귀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2018 평창 올림픽 당시 어사화 수호랑이 인기를 끌며 재고가 바닥을 드러냈던 것과 비슷한 사례다. 사재기 현상에 품목별로 ‘1인당 1개’ 구매 개수 제한까지 생겨났다.

매장 개장 30분 전인 오전 9시 반, 가로 세로 넓이 1.5m 가량의 정육면체 상자 두 개가 등장하고 그 안에서 빙둔둔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빙둔둔이다!(冰墩墩來了!)”라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약 50개만 입고된 이 인형은 매장을 열자마자 20분도 안돼 다시 품절되는 운명을 맞았다. 다른 빙둔둔 굿즈도 가게 문을 열자 마자 매장 최대 수용 인원인 10명의 잽싼 손놀림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최고 인기 상품인 빙둔둔 인형을 손에 넣은 행운의 중국 고객 가운데는 과욕을 부리는 이도 있었다. 30분 넘게 물건을 고르는 척 매장에 머물면서 다음 상품 입고를 기다린 것. 어떤 이들은 바깥에 줄지어선 사람들은 아랑곳 않은 채 고향에 있는 가족 또는 친지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 추가로 사고 싶은 상품을 논의하기도 했다. 가게 바깥 유리창으로 이 모습을 보며 기다리는 손님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창 밖에서 3시간 동안 기다린 기자도 난리통 속에 빙둔둔 굿즈 3개를 구했다. 그 중 하나는 오전 7시부터 함께 기다린 베이징이공대 3학년 바이원숴(22·白聞碩)의 부탁으로 산 빙둔둔 열쇠고리였다.

그는 “친구가 이걸 꼭 갖고 싶다고 했는데 덕분에 내 것과 친구 것 모두 살 수 있었다. 당신에게 큰 신세를 졌다”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열쇠고리 가격은 68위안(약 1만2800원)이었지만 기자는 70위안(약 1만3200원)과 500ml 콜라 한 병을 수고비(?)로 받았다.

우체국 앞 굿즈 포장하는 사람들.

바이원숴는 곧장 인근의 우체국으로 가 다시 줄을 섰다. 폐쇄루프 밖 친구에게 힘들게 구한 굿즈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이미 우체국 앞도 중국인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빙둔둔 관련 굿즈는 온라인에서 정가 4배 이상으로 거래될 만큼 인기다. 아직 굿즈를 사지도 못해 가게 앞에 줄을 선 중국인들은 우체국 앞에 늘어선 중국인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탄식을 내뱉을 뿐이었다.

“정말 너무하네!(太過分了!)”


베이징=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