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영 정치부 차장
대선 후보의 말을 듣다 보면 ‘이건 벼락치기로 공부했구나’ 싶을 때가 있다. 워낙 얼굴 들이밀어야 할 업계가 많을 테니 대개는 넘긴다. 그래도 도무지 못 봐주겠는 경우를 본다.
이런 상황이 그렇다. 8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택시업계 간담회에서 “정부가 재정으로 출자하는 (택시호출)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카카오T 등이 받아가는 수수료에 대한 기사들의 불만을 공공 앱으로 풀겠다는 얘기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사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전날에는 ’철학’이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기업인을 상대로 한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강연이었다. 윤 후보는 자신의 경제성장 모델을 부각시키며 정부의 역할에 관해 “시장이 당장 하기 어려운 인프라를 구축하고, 참여자들이 시장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신뢰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룻밤 새 정책 기조가 180도 바뀌진 않는다. 스스로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고 볼 수밖에.
물론 공부를 더 하면 한자리에서도 철학이 다른 얘기를 물 흐르듯 구사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지난해 11월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 경기도지사 시절 만든 공공 배달앱 ‘배달특급’을 입에 올렸다. “(시장의 예측과 달리) 현재까지 매우 순항하고 있다”는 ‘깨알 자랑’도 했다. 플랫폼으로 먹고사는 이들 앞에서 머쓱했는지 “저희(경기도)가 공공의 우월성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고 시장에 한 주체로 참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라리 공공이 시장질서 좀 잡으러 들어갔다고 했으면 황당하진 않았을 텐데.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배치되는 말을 이어간다. “정부 역할의 핵심은 혁신과 창의가 제대로 발휘되도록 자유로운 경쟁 활동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숨넘어가듯 그날그날 공부해서 지르는 후보, 유불리 셈법 속에 한자리에서도 두말하는 후보, 모두 철학의 빈곤이다.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3·9대선 수험생에게 보완을 위한 마무리 학습법을 안내하고자 한다. ‘RE100’, ‘텍소노미’, ‘청약 만점’ 모른다고 새 문제집 풀지 말라. 기본 개념 위주로 단단하게 공부해야 변주도 가능하다. 아는 후보도 장담 말고 기출문제 2번씩 풀어 보라. 막판에 또 답안지 바꾸다가 본전도 못 찾는다. 무엇보다 교과서만 한 게 없다. ‘나는 왜 대통령을 하려 하는가’를 다시 한 번 진중하게 고민하고 새기라.
홍수영 정치부 차장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