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겨울올림픽] 심판 개입 거의 없던 깔끔한 경기 황대헌 금 못 땄어도 박수쳤을 것
베이징=김배중 기자
개최국 편파 판정 논란으로 얼룩진 7일 쇼트트랙 남자 1000m가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 본 가장 찝찝한 경기였다면, 9일 열린 남자 1500m는 지금까지 본 가장 깔끔한 경기였다.
석연치 않은 실격 판정으로 고배를 마신 황대헌(23·강원도청)은 마치 1500m에서는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듯 팔 움직임을 자제했다. 추월 때도 아웃코스를 활용한 그는 아예 레이스 중반부터는 선두로 치고나간 뒤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벌렸다. 이 전략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졌다. 황대헌은 이날 “깔끔한 경기 중에 가장 깔끔한 경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숨겨왔던 전략을 설명했다.
전 세계 시청자들로부터 공분을 산 심판진도 이날은 경기에 대체로 개입하지 않았다. 억울하게 레이스를 못 마친 선수들을 결선으로 끌어올리는 관대함도 보였다. 이로 인해 보통 같으면 6명이 올랐을 결선에 10명이나 진출해 출발선에 선수들이 2열 횡대로 서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심판이 제 역할을 하니 경기를 치를 때마다 씁쓸함만 남던 쇼트트랙이 제법 볼만해졌다. 선수들도 레이스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결선이 끝난 뒤 “금메달 딴 선수를 바짝 뒤따라갔더니 좋은 성적으로 완주했다”는 은메달리스트의 소감도 눈길을 끌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올림픽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서가 아니다. 비록 황대헌이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더라도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가 ‘심판 개입’ 없이 포효할 수 있는 깔끔한 경기였다면 흔쾌히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인 스포츠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쟁을 벌일 때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그런 현장의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우리 선수가 있었을 뿐이다.
베이징=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