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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돈으로 바꿔드립니다”…재활용 컨설팅 기업 ‘테라사이클’ 이야기 [강은지의 반짝반짝 우리별]

입력 | 2022-02-11 14:00:00

버려지는 폐기물의 재활용 방안 찾아 컨설팅
‘순환경제’ 흐름 타고 찾는 기업 늘어나
“테라사이클이 필요없는 사회”가 목표




‘화장품 빈 병 가져오세요.’

최근 화장품 매장을 방문했다면 아마도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꼭 매장이 아니어도 됩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같은 마케팅 문구가 떠 있었을 테니까요. 최근 1, 2년 새 화장품 업계에 이런 이벤트가 많이 등장했습니다. 스킨이나 로션, 에센스 등 화장품을 다 쓰고 남은 빈 병을 가져오면 한데 모아 처리하겠다는 얘기입니다.

화장품 회사 ‘더바디샵’에서 진행한 화장품 빈 병 수거 행사. 테라사이클 제공

화장품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즉석밥 음료수 등을 생산하는 식품업계, 대형 마트를 포함한 유통업계는 최근 사용 후 버려지는 포장재들을 회수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하고 난 포장재를 택배회사와 연계해 도로 가져오거나 마트에서 직접 수거하는 방식입니다.

번거로울 텐데,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뭘까요? 바로 탄소중립(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아 순배출량이 0이 되는 단계) 달성이 우리 사회 가장 큰 목표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버려지는 폐기물을 줄이고 자원을 계속 사용하는 ‘순환경제’ 구축이 필수입니다. 그러려면 자원 회수라는 첫 단계부터 잘 해야겠죠.

즉석밥 용기 수거 캠페인을 시작한 CJ제일제당.

‘테라사이클(Terracycle)’은 일찍이 이런 흐름에 올라탄 글로벌 재활용 컨설팅 기업입니다. 폐기물 처리 문제로 고민하는 기업에 재활용 방안을 제시하고, 재활용 업체와 협업해 자칫하면 그대로 소각되거나 매립될 폐기물을 재탄생시키는 일이 이들의 역할이죠. 2001년 미국에서 설립된 테라사이클은 지금까지 21개국에 진출했습니다. 한국 법인은 2017년 9월에 만들어졌네요.

지난달 24일 서울 강동구 새활용플라자에 있는 테라사이클 사무실을 가 봤습니다. 직원 10여 명이 이 곳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있는 에릭 가와바타 테라사이클 아시아태평양 총괄매니저와는 이메일을 통해 궁금한 점을 물어봤습니다.

글로벌 재활용 컨설팅 기업 ‘테라사이클(Terracycle)’


● ‘쓰레기’를 없애라
 테라사이클에 대해 가와바타 총괄매니저는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쓰레기’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겠다는 비전으로 출발한 회사”라고 소개합니다. 쓰레기가 말 그대로 쓰레기로 버려지지 않도록 활용 방법을 찾는다는 얘기입니다. 테라사이클의 시작이 2001년 당시 미국 프린스턴대 학생이던 톰 재키 대표가 구내식당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지렁이에게 먹인 뒤 그 배설물을 비료로 판 것이라는 점을 돌아보면 납득이 됩니다.

카프리썬 주스 봉투 수거 캠페인. 봉투를 회수해 가방을 만든다는 내용을 담았다. 테라사이클 제공


이 회사가 이름을 크게 알린 것은 2008년 ‘카프리썬’ 주스 봉투로 가방을 만들면서 입니다. 당시 테라사이클은 식품회사 크래프트푸드와 협업해 다 마시고 버리는 주스 봉투를 수거해 가방과 필통을 만들어 판매했습니다. 쓰레기가 될 뻔한 비닐봉투가 가방으로 재탄생했다는 점이 화제를 모으면서 크래프트푸드의 이미지와 인지도가 급상승했죠. 사회 공헌에 대한 기업의 니즈, 그리고 쓰레기를 줄이겠다는 테라사이클의 목적이 맞아떨어지면서 상생효과를 낸 사례입니다.

이후 테라사이클에 연락해 오는 화장품 회사가 크게 늘었습니다. 화장품 용기는 유리와 고무, 플라스틱과 철제 스프링 등이 혼합된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용기는 가정에서 일일이 분리해 배출하기 특히 어렵습니다. 또 분리배출해도 크기가 작아 제대로 재활용되기도 어려워 화장품 용기는 재활용계의 골칫덩어리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만 진출했던 테라사이클이 한국에 온 것도 2016년 아모레퍼시픽의 컨설팅 문의가 계기가 됐다고 하네요.
● ‘버려지던 것’의 재탄생

락앤락과 진행한 밀폐용기 수거 캠페인. 밀폐용기를 가져오면 제품 할인 쿠폰을 제공했다. 테라사이클 제공


테라사이클이 버려지던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방식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재활용을 할 때 대대적으로 캠페인을 해 소비자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것입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우선 매장에 예쁘게 만든 수거함을 비치합니다. 해당 기업들과 협의가 된 경우는 빈 용기를 반환하면 상품을 살 수 있는 포인트나 할인쿠폰을 지급하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참여자를 선정해 기념품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요거트를 먹고 난 통을 재활용해 만든 화분과 모종삽. 테라사이클 제공

재활용 결과 역시 소비자가 직접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패스트푸드점에서는 페트 음료 컵을 재활용한 솜으로 감자튀김 모양의 액세서리를 만들어 나눠줬고, 화장품 회사는 수거한 화장품 빈 병으로 벽돌과 테이블 등 건축 자재로 재활용해 매장을 꾸몄습니다. 먹고 남은 요거트 통은 화분과 모종삽 세트로 만들어 판매하고, 폐타이어와 자동차 폐시트는 러닝 트랙으로 만들어 공원에 설치했습니다. 가와바타 총괄매니저는 “재활용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내가 올바른 방법으로 모은 수거품이 자원이 돼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하게끔 한다”고 설명합니다.

● ‘테라사이클’이 필요 없기를

수도권의 한 재활용 분리수거장. 국내에서 배출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의 양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동아일보 DB

2017년 한국 지사가 설립됐을 때만 해도 테라사이클에 재활용 컨설팅을 맡기는 기업은 극소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3년간 상황이 급변했죠. 2018년 전 세계 폐플라스틱을 사들이던 중국이 수입을 중단했고, 2019년 전국 곳곳에 폐기물이 쌓이면서 ‘쓰레기산’을 이뤘던 것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2020년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사용 후 버려지는 배달 용기와 택배 포장재 급증 문제를 낳았죠. 여기에 국제사회에서는 기후위기 심각성이 부각됐고, 지속가능한 경영과 환경에 대한 기업의 책임론이 커졌습니다. 해법을 찾기 위해 테라사이클을 찾는 기업도 2017년 한두 곳에서 2021년 25곳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가정에서 배출되는 쓰레기의 40% 가량은 식품과 화장품, 세제 등을 담았던 포장재다. 동아일보 DB

기업들이 ‘우리 제품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있겠느냐’고 문의하면 방법을 찾아주는 것이 테라사이클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테라사이클은 재활용이 만능 해법은 아니라고 봅니다. 플라스틱과 같은 재생원료는 반복해서 재활용하면 품질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애초에 자원을 버리지 말아야 쓰레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죠. 테라사이클의 목표가 ‘테라사이클이 필요 없는 세상’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와바타 총괄매니저는 “궁극적으로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일회용품보다는 다회용품을 사용하고, 플라스틱에 대한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합니다.
재사용으로 쓰레기 발생 ‘제로’를 꿈꾸는 루프

다회용기 재사용 유통 플랫폼 ‘루프(Loop)’.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자원을 계속 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테라사이클은 자회사 ‘루프’를 통해 유통업계 재사용(Reuse) 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2019년 미국과 프랑스에서 시작한 루프는 2020년 영국에, 지난해는 캐나다와 일본에 진출했습니다.

루프는 다회용 용기에 내용물을 담아 판매하고 빈 용기를 수거해 계속 사용하는 유통 플랫폼입니다. 병 우유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소비자는 유리병에 담긴 우유를 사서 우유(내용물)를 마신 뒤 병(다회용기)을 반납합니다. 기업은 우유병을 수거해 살균 세척한 뒤 다시 우유를 담아 판매합니다. 우유를 마신 뒤 병을 버리거나 다른 것으로 재활용하지 않아도 되니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죠.

루프는 아이스크림 화장품 세제 등을 다회용기에 담아 판매하고 회수해 재사용한다. 테라사이클 제공


이런 모델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판매처 모두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판매는 우리나라에 있는 새벽 배송 시스템과 매우 유사한데요. 루프 온라인 상점에서 샴푸와 로션 등을 사면 다회용기에 담긴 제품이 배달되고, 이후 회수를 신청하면 빈 용기를 수거해 갑니다. 이렇게 배송되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은 보냉 기능이 있는 스테인리스 용기에, P&G 샴푸는 알루미늄 재질의 병에 담겨 옵니다. 기업 입장에서 초기 다회용기 마련 비용은 좀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배출되는 쓰레기를 줄일 수 있어 이점이 많습니다.

영국 쇼핑몰에 있는 루프 제품들. 기업들은 기존에 판매하는 음료와 세제 등을 다회용기에 담아 판매하고, 루프는 다회용기 유통 시스템을 운용한다. 테라사이클 제공


오프라인 판매는 대형 마트나 쇼핑몰 등 기존 판매점과 연계해 진행합니다. 소비자들이 다회용기에 든 제품을 산 뒤 해당 매장을 다시 방문할 때 반납하는 방식입니다. 다회용기에 제품을 담아 파는 종류는 아이스크림, 껌, 커피 원두, 세제, 화장품 등 다양합니다. 지난해 5월 일본의 한 체인 쇼핑센터에서 처음 선을 보인 루프 매장은 출범 6개월 만에 매장 수가 19개에서 30개로 늘어난 상황입니다.

프랑스 쇼핑몰에 있는 루프 제품 수거함. 빈 용기는 쇼핑할 때 반납할 수 있게 해 소비자 편의를 높였다. 테라사이클 제공


테라사이클은 루프의 한국 론칭 시기를 2023년으로 잡았습니다. 계획대로 된다면 내년에는 대형 마트에서 루프 매장을 이용하거나,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루프 제품을 배송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관건은 다회용기 청결도 확보와 편리한 반납 시스템 구축입니다. 이유정 테라사이클 한국 팀장은 “연내 루프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는 다회용기 세척 시스템과 배송 방식 등을 점검하고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