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재활용 컨설팅 기업 테라사이클 폐기물 재활용해 순환경제 구축… 2001년 美서 설립돼 21개국 진출 사회공헌 맞아떨어져 큰 호응… 화장품-유통업계 등 회수 동참 수거품으로 만든 제품 매장 열고, 기업체에는 재활용 방법 알려줘
테라사이클에서 만든 제품들을 이유정 테라사이클 한국 팀장이 소개하고 있다. 액자와 캠핑용 상자, 가방, 줄넘기 등 모두 버려지는 폐기물을 재활용해 만든 제품이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화장품 빈 병 가져오세요.’ 최근 1, 2년 새 화장품 매장에 많이 등장한 문구다. 스킨이나 로션, 에센스 등 화장품을 다 쓰고 남은 빈 병을 가져오면 한데 모아 처리하겠다는 얘기다. 화장품만 그런 것이 아니다. 즉석밥 음료수 등을 생산하는 식품업계, 대형 마트를 포함한 유통업계는 최근 사용 후 버려지는 포장재들을 회수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탄소중립(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아 순배출량이 0이 되는 단계) 달성을 위해서는 버려지는 폐기물을 줄이고 자원을 계속 사용하는 ‘순환경제’ 구축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자원을 회수하는 것이 첫 단계다. ‘테라사이클(Terracycle)’은 일찍이 이런 흐름에 올라탄 글로벌 재활용 컨설팅 기업이다.》
기업에 재활용 방안을 제시하고 재활용 업체와 협업해 자칫하면 그대로 소각되거나 매립될 폐기물을 재탄생시키는 일이 이들의 역할이다. 2001년 미국에서 설립된 테라사이클은 지금까지 21개국에 진출했다. 한국 법인은 2017년 9월에 만들어졌다.
지난달 24일 서울 강동구 새활용플라자에 있는 테라사이클 사무실을 찾았다. 직원 10여 명이 이곳에서 근무한다. 일본에 있는 에릭 가와바타 테라사이클 아시아태평양 총괄매니저와 이메일 인터뷰도 진행했다.
○ ‘쓰레기’를 없애라
테라사이클에 대해 가와바타 총괄매니저는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쓰레기’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겠다는 비전으로 출발한 회사”라고 소개했다. 쓰레기가 말 그대로 쓰레기로 버려지지 않도록 활용 방법을 찾는다는 얘기다. 테라사이클의 시작이 2001년 당시 미국 프린스턴대 학생이던 톰 재키 대표가 구내식당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지렁이에게 먹인 뒤 그 배설물을 비료로 판 것이라는 점을 돌아보면 납득이 된다.
이 회사가 이름을 크게 알린 것은 2008년 ‘카프리썬’ 주스 봉투로 가방을 만들면서다. 당시 테라사이클은 식품회사 크래프트푸드와 협업해 다 마시고 버리는 주스 봉투를 수거해 가방과 필통을 만들어 판매했다. 쓰레기가 될 뻔한 비닐봉투가 가방으로 재탄생했다는 점이 화제를 모으면서 크래프트푸드의 이미지와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사회 공헌에 대한 기업의 니즈, 그리고 쓰레기를 줄이겠다는 테라사이클의 목적이 맞아떨어지면서 상생효과를 낸 사례다.
이후 테라사이클에 연락해 오는 화장품 회사가 늘었다. 화장품 용기는 유리와 고무, 플라스틱과 철제 스프링 등이 혼합된 경우가 많다. 이를 가정에서 일일이 분리해 배출하기 어렵고, 분리 배출해도 크기가 작아 제대로 재활용되기도 어려워서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만 진출했던 테라사이클이 한국에 온 것도 2016년 아모레퍼시픽의 컨설팅 문의가 계기였다.
○‘버려지던 것’의 재탄생
재활용 결과 역시 소비자가 직접 느낄 수 있게 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는 페트 음료 컵을 재활용한 솜으로 감자 튀김 모양의 액세서리를 만들어 나눠줬고, 화장품 회사는 수거한 화장품 빈 병으로 벽돌과 테이블 등 건축 자재로 재활용해 매장을 꾸몄다. 먹고 남은 요거트 통은 화분과 모종삽 세트로 만들어 판매하고, 폐타이어와 자동차 폐시트는 러닝 트랙으로 만들어 공원에 설치했다. 가와바타 총괄매니저는 “재활용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내가 올바른 방법으로 모은 수거품이 자원이 돼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하게끔 한다”고 설명했다.
○‘테라사이클’이 필요 없기를
2017년 한국 지사가 설립됐을 때만 해도 테라사이클에 재활용 컨설팅을 맡기는 기업은 극소수였다. 그러나 이후 3년간 상황이 급변했다. 2018년 전 세계 폐플라스틱을 사들이던 중국이 수입을 중단했고, 2019년 전국 곳곳에 폐기물이 쌓이면서 ‘쓰레기산’을 이뤘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사용 후 버려지는 배달 용기와 택배 포장재 급증 문제를 낳았다. 여기에 국제사회에서는 기후위기 심각성이 부각됐고, 지속가능한 경영과 환경에 대한 기업의 책임론이 커졌다. 해법을 찾기 위해 테라사이클을 찾는 기업도 2017년 한두 곳에서 2021년 25곳으로 늘어났다.
기업들이 ‘우리 제품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있겠느냐’고 문의하면 방법을 찾아주는 것이 테라사이클의 역할이다. 그러나 테라사이클은 재활용이 만능 해법은 아니라고 본다. 플라스틱과 같은 재생원료는 반복해서 재활용하면 품질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애초에 자원을 버리지 말아야 쓰레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테라사이클의 목표가 ‘테라사이클이 필요 없는 세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와바타 총괄매니저는 “궁극적으로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일회용품보다는 다회용품을 사용하고, 플라스틱에 대한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샴푸-로션 등 용기 세척후 재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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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사용 모델 만든 자회사 루프
루프에서 판매하는 제품들. 다회용기에 세탁 세제와 껌, 구강청결제, 샴푸 등을 담아 판매하고 빈 용기는 수거해 다시 사용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루프는 다회용 용기에 내용물을 담아 판매하고 빈 용기를 수거해 계속 사용하는 유통 플랫폼이다. 병 우유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소비자는 유리병에 담긴 우유를 사서 우유(내용물)를 마신 뒤 병(다회용기)을 반납한다. 기업은 우유병을 수거해 살균 세척한 뒤 다시 우유를 담아 판매하면 된다. 우유를 마신 뒤 병을 버리거나 다른 것으로 재활용하지 않아도 되니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모델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판매처 모두에 적용할 수 있다. 온라인 판매는 우리나라에 있는 새벽 배송 시스템과 유사하다. 루프 온라인 상점에서 샴푸와 로션 등을 사면 다회용기에 담긴 제품이 배달되고, 이후 회수를 신청하면 빈 용기를 수거한다. 이렇게 배송되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은 보랭 기능이 있는 스테인리스 용기에, P&G 샴푸는 알루미늄 재질의 병에 담겨 온다.
오프라인 판매는 대형마트나 쇼핑몰 등 기존 판매점과 연계한다. 소비자들이 다회용기에 든 제품을 산 뒤 해당 매장을 다시 방문할 때 반납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5월 일본의 한 체인 쇼핑센터에서 처음 선을 보인 루프 매장은 출범 6개월 만에 매장 수가 19개에서 30개로 늘어난 상황이다.
테라사이클은 루프의 한국 론칭 시기를 2023년으로 잡았다. 계획대로 된다면 내년에는 대형마트에서 루프 매장을 이용하거나,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루프 제품을 배송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유정 테라사이클 한국 팀장은 “연내 루프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는 다회용기 세척 시스템과 배송 방식 등을 점검하고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