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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살아남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입력 | 2022-02-12 03:00:00

◇생일을 모르는 아이/구로카와 쇼코 지음·양지연 옮김/348쪽·1만6800원·사계절




2010년 5월 12일 일본 교토지방재판소 101호 법정. 피고인 다카기 가오리(당시 37세·수감 중)는 죽은 넷째 딸의 망가진 폐혈관 조직 사진을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2008년 병원에 입원 중이었던 막내인 다섯째 딸(22개월)의 링거에 썩은 물을 넣었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수사 과정에서 그의 둘째(3년 9개월), 셋째(2년 2개월), 넷째(8개월)가 모두 병사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범행을 벌인 이유에 대해 “의사 선생님이 걱정해주는 아이, 관심 가져주는 특별한 아이의 엄마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부모가 아이를 환자라고 생각하고 불필요한 진찰과 치료를 반복하게 하는, 아동학대의 유형 중 하나다.

변호사 비서, 잡지 기자로 일한 저자는 아동학대를 겪고 ‘살아남은’ 아이 5명과 함께 보낸 시간을 세세한 기록으로 남겼다. 엄마의 갖은 학대를 받다 세 살 때 아동 상담소로 온 미유(현재 초등학교 3학년)는 자신의 생일이 7월 10일인지도 몰랐다. 다섯 살 때 아동 상담소에 맡겨진 마사토는 배에 칼로 베인 상처가 있었고 손에는 화상 흉터가 있었다.

아동학대 현실을 파고들면서 저자는 아동학대를 가해자의 관점이 아닌 피해 아동의 관점에서, 학대의 전체 구조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아동 치료 전문가의 말을 전한다. 아동학대는 가해자와 피해 아동을 분리하면 끝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학대를 받은 아이들은 억압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으면, 그동안 억눌려 있던 감정을 자신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간호사에게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성(性)학대를 받은 아이는 자신이 겪은 것을 또래 아이에게 그대로 행하기도 한다. 이 아이들을 또 다른 가해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선 세심한 관찰과 치료가 필요하다.

아동학대 뉴스를 빈번히 접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