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속 비행, 빠른 납품… 1000대+α 판매 기대
한눈에 보는 T-50 ‘골든이글’
2022년은 고등훈련기개발사업(KTX-2)의 결실인 한국형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골든이글’이 첫 비행에 성공한 지 20년 되는 해다(표 참조). 2002년 한일 월드컵 열기가 채 식기 전인 8월 첫 비행에 성공한 T-50은 항공산업 후발국으로 평가받던 한국이 개발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우수한 초음속 고등훈련기였다. 당대 고등훈련기·전술입문기 중 최고 성능으로 세계 방위산업계의 주목을 받았다.오늘날 세계 고등훈련기·전술입문기 시장은 한국산 T-50 시리즈를 비롯해 영국 호크(Hawk), 체코 L-159, 이탈리아 M-346, 러시아 YAK-130, 중국 JL-9과 JL-10 등이 주도하고 있다. 그 어떤 기종도 속도와 공중 기동성, 확장성 측면에서 T-50을 따라오지 못한다. 경쟁 기종은 대부분 말 그대로 제트 항공기 비행 기술을 연마하기 위한 훈련기로 설계된 반면 T-50은 전투기 전용을 염두에 두고 개발됐기 때문이다.
보잉-사브 컨소시엄에 고배
다만 우수한 성능과 별개로 T-50은 그간 방산 시장에서 부침을 거듭했다. 전투기로 투입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성능은 가격 경쟁력 악화로 이어졌다. 결국 싱가포르, 이스라엘,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영국, 그리스, 크로아티아, 아르헨티나, 베트남 등의 신형 군용기 입찰에서 경쟁 기종에 패배했다. 이 같은 문제는 T-50이 참여한 미 공군 T-X 사업 수주전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미 공군은 1950년대 도입하기 시작한 노후 기종 T-38을 대체하고자 2016년 차세대 고등훈련기 사업을 시작했다. 개발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T-50을 대대적으로 개량한 T-50A 모델로 입찰에 참가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보인 보잉-사브 컨소시엄에 패배한 것이다.당시 미 공군은 163억 달러(약 19조5000억 원) 예산을 들여 신형 훈련기 350대를 도입하고자 2019년 기종 선정, 2022년 양산, 2024년 초기작전능력(IOC) 획득으로 이어지는 계획을 수립했다. 미 공군의 후속 물량과 해군의 신형 훈련기 사업, 미 동맹국들의 훈련기 대체 소요를 합치면 1000대 가까이 되는 엄청난 규모의 사업이었다. 4개 컨소시엄이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중 보잉-사브 컨소시엄은 92억 달러(약 11조 원) 가격에 기체 472대는 물론, 지상 시뮬레이터까지 공급하겠다는 파격적 제안을 내놨다. 결국 T-X 사업을 수주한 보잉-사브 컨소시엄은 T-7이라는 모델을 내놨다.
항공기의 실속은 구조 설계 문제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항공기를 띄우는 양력이 급감하고 항공기를 밀어내는 항력이 급증해 기체가 추락할 수도 있다. T-7은 받음각, 즉 날개가 받는 바람의 각도가 급격하게 높아지면 예상보다 빠르게 실속에 빠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항공기로서는 치명적 결함이다. 기체 진동도 항공기 안전과 직결된 치명적 문제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체 설계 자체를 바꿔야 한다. 보잉-사브 컨소시엄 측은 비행 제어 소프트웨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2년째 답보 상태다.
보잉-사브 컨소시엄의 고등훈련기 T-7. [사진 제공 · 보잉]
미 공군 “빠른 납품 가능해야”
T-7의 구조적 결함이 해결되지 않자 미 공군의 인내심은 결국 바닥을 드러냈다. 현용 훈련기 T-38은 한국 공국조차 예전에 퇴역시킨 노후기로, 당장 운용이 어려운 상태다. 결국 미 공군은 2020년 초 T-7의 결함을 해결하기 전까지 잠시 사용할 훈련기를 마련하겠다며 RFX(ReForge eXperimental)라는 명칭으로 8대 물량의 T-50A 임대를 추진했다. 이듬해 10월에는 RFX 사업을 고등전술훈련기(ATT) 사업으로 전환해 고성능 훈련기 100~400대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 T-7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이다.미 공군은 ATT 사업에서 몇 가지 핵심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 애프터버너(afterburner)를 탑재해 초음속 비행이 가능해야 하고, 많은 연료 소모를 감당할 대용량 내부연료탱크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공대공미사일과 기본적인 정밀유도무기를 운용할 수 있는 미션컴퓨터, 다기능 레이더 등도 요구했다. 우수한 기동성을 갖춰 훈련은 물론, 전술 임무에도 투입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T-7 도입 과정에서 ‘트라우마’ 때문인지 미 공군은 무엇보다 “빠른 납품이 가능해야 한다”고 못 박기도 했다.
현재 시장에 나온 고등훈련기 중 이러한 요구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T-50A뿐이다. T-50A는 기존 T-50을 전면 재설계해 연료탱크 용량을 크게 늘리고 공중 기동성을 향상시킨 모델이다. 첨단 항공전자장비를 갖춘 것은 물론, 현존 고등훈련기 가운데 가장 빠른 마하(음속) 1.5 속도로 비행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에어쇼팀인 한국 공군 블랙이글스(제53특수비행전대)가 T-50을 운용할 정도로 공중 기동성 역시 수준급이다. 이미 안정적 생산체계도 갖추고 있어 주문만 하면 즉각 생산 및 납품도 가능하다.
“페라리는 출퇴근용 아니다”
지난해 2월 찰스 브라운 미 공군참모총장은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페라리는 주말에나 타는 것이지 출퇴근용은 아니다”라며 높은 운용 유지비와 많은 정비 시간이 소요되는 5·6세대 전투기보다 운용에 부담이 없는 4.5세대급 다목적 전투기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의 발언을 계기로 미 공군이 ATT 사업으로 획득할 신형 항공기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고등훈련기라고 하기에는 뛰어난 성능이 오히려 단점으로 지적되던 T-50은 미 공군 ATT 사업을 계기로 ‘기생역전(機生逆轉)’ 기회를 잡게 됐다. 미 공군의 제식 훈련기로 채택되면 미국은 물론, 동맹 및 우방국 방산 시장 진출도 용이해진다. 당초 미국 T-X 사업 계획이 항공기 1000대 이상을 도입하는 것이었음을 감안하면 1000대+알파(α) 규모 판매도 노려볼 수 있다. T-50이 확실한 승기를 잡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치밀하고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26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