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때 처음 간 미술학원에서 아이는 음표와 건반을 그렸다. 옆의 음악학원으로 옮겼다. 피아노도 잘 쳤지만 다음 해부터 오선지를 그려 곡을 쓰기 시작했다. 여덟 살 때 피아노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에 입학했고 TV 프로그램 세 곳에 영재로 출연했다.
“결선이 두 프로그램으로 열리는데, 첫 결선에서 현대곡과 베토벤의 3중주곡을 연주하게 되어 있어요. ‘현대곡으로 제가 쓴 곡을 연주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주최측과 심사위원들이 좋아하시더군요.”
이 콩쿠르 전 이미 서형민의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2016년 통영에서 열리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한 3년 뒤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5년만의 한국 무대를 가졌고 2020년 11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열 살 때 미국 매네스 음대 예비학교에 입학하면서 국내 음악계와 학연의 끈은 사라졌지만, 마음이 맞는 음악가들과 현악 합주단 ‘노이에 앙상블’을 창단해 지난달 데뷔연주를 지휘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진 뒤 두 가지 화제가 그를 따라다녔다. 하나는 그의 어머니다. 지난해 공연 전문지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16살 때 상경해 봉제공장에 취직한 뒤 야간학교를 다니며 주경야독했고, 아들을 위해 낯선 미국으로 건너가 네일샵과 세탁소에서 밤낮으로 일한 ‘어머니, 위대한 세 글자’에 감사를 표했다.
서형민이 이겨내 온, 앞으로 이겨내야 할 중요한 역경 중 하나는 그를 줄곧 따라다닌 손가락 염증이다. 손톱이 들뜨며 통증이 찾아왔고 때로는 고름이 찼다. 2016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 진출, 2019년 비오티 콩쿠르 준우승 등을 모두 그 고통과 싸우며 이겨냈다. 다행히 이제는 통증이 연주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지난해 베토벤 콩쿠르 우승으로 그에게는 많은 기회가 열렸다. 올해 9월에는 콩쿠르 우승 혜택으로 본 베토벤 오케스트라 멤버들과 독일에서 연주한다. “자작곡도 연주하고, 지휘도,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계획하고 노력을 배분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피아노에 주력하면서 다른 기회가 오면 감사하게 받아들이려 합니다. 작곡에 대한 열정은 분명하고요.” 야심작이 될 피아노협주곡도 12년째 ‘끄적거리고’ 있다. 그는 러시아 근대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을 연상시키는, 듣기 어렵지 않은 곡이 될 것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