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천광암 칼럼]괜한 걱정만은 아닌 현직 대통령 부인 첫 형사소추

입력 | 2022-02-14 03:00:00

커지는 김혜경·김건희 사법 리스크
한번도 없었던 대통령 부인 형사소추
20대 대통령 임기 중 현실 되나
철저한 수사 통한 신속한 결론이 최선



천광암 논설실장


우리 헌법 84조에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다. 대통령 배우자에게는 이런 예외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배우자가 형사소추를 받은 사례는 한 번도 없다. 대통령 재임 중은 물론 퇴임 후도 마찬가지다. 수사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일이 몇 차례 있었을 뿐이다.

첫 검찰조사를 받은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이다. 이순자 씨는 2004년 남편의 비자금과 관련해서 대검 중앙수사부에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권양숙 여사는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2009년과 2012년 검찰의 대면 및 서면 조사를 받았으나 최종적으로는 입건유예 처리됐다. 김윤옥 여사는 유일하게 대통령 임기 중 수사기관 조사를 받았다. 내곡동 사저 매입 관련 의혹을 수사하던 이광범 특검이 김 여사를 참고인 신분으로 서면조사했다.

어쩌면 다음 달 9일 선출되는 20대 대통령의 임기 중에 배우자가 형사소추 대상이 되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이 헌정사에 추가될지도 모르겠다. 김혜경 씨의 ‘과잉의전’ 및 법인카드 유용 의혹과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새로운 내용들이 추가되면서 갈수록 살이 붙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경 씨의 과잉의전 의혹 피해자인 전 경기도 비서실 7급 직원 A 씨는 10일 법인카드 유용 사례를 추가로 폭로했다. A 씨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4∼10월 김혜경 씨의 측근이자 도청 총무과 5급 직원인 배모 씨의 지시로 베트남음식 초밥 복요리 중식 닭백숙 등을 사서 김 씨의 집에 배달했다. A 씨는 자신의 카드로 먼저 음식값을 계산하고 하루 이틀 뒤 다시 가서 경기도의 법인카드로 다시 결제했다고 한다. 음식값 결제를 위해 경기도 기획담당관실 노동정책과 자치행정과 공정경제과 등 5개 부서의 법인카드가 사용됐다는 의혹이 나온다.

배 씨와 A 씨 사이에 배달한 음식을 누가 다 먹었는지를 놓고 의견을 나누는 녹취도 공개됐다. A 씨의 전임자가 같은 내용을 궁금해했다는 대목도 있다. 녹취 안에서 배 씨는 A 씨의 전임자 이름을 거론하며 “○○○도 못 풀고 간 미스터리야. 나한테 맨날 그랬어. 저걸 진짜 다 드시는 거냐고”라고 말한다. 녹취 내용이 사실이라면 전부터 비슷한 일이 있었을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다.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련 의혹은 지난해 10월 윤석열 후보 측이 해당 계좌를 공개하면서 ‘일단락’으로 향하는 듯했다. 그러나 KBS 보도 등으로 추가 의혹이 제기되면서 불씨가 다시 커졌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은 2009년 12월부터 2012년 12월 사이에 벌어진 사건으로, 이 회사 권오수 회장과 ‘주가조작 선수’ 이모 씨는 이미 기소돼서 재판을 받고 있다. 김건희 씨는 ‘전주(錢主)’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당초 윤 후보 측은 “이 씨가 주식전문가라고 해서 2010년 1월부터 신한증권 계좌로 주식거래를 일임했는데 손해만 봤다. 그래서 그해 5월 이 계좌에 남아 있던 주식을 다른 계좌로 옮기고 이 씨와 관계를 끊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9일 KBS 보도에 따르면 2010년 10월부터 2011년 3월까지 대신증권 등 다른 증권사에 개설된 김건희 씨 계좌를 통해 40차례 이상 거액의 주식거래가 있었다고 한다. 권 회장 등이 ‘작전’을 하는 데 동원한 주식의 7.7%(거래금액 기준)가량이 김건희 씨 계좌를 거쳐 갔다는 것이다.

두 후보 배우자들의 의혹이 사실이라면 모두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운 사안이다. 소속 공무원을 개인 집사처럼 부리고, 법인카드를 유용해 개인 식비로 썼다는 것은 금액의 다과 등을 떠나 공직질서의 기본을 뒤흔드는 일이다. 또 수많은 개미들을 절망으로 내모는 주가조작은 자본시장의 근간을 허무는 행위다.

진실 규명에 대한 수사기관의 의지가 확실하고, 당사자들의 협조가 뒤따른다면 두 사건 수사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혐의 내용도 단순하고, 확실한 물증이나 기록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만약 수사 대상이 유력 대선 후보의 배우자라는 불편함 때문에 검경이 수사를 미적댄다면 국민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자신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의 부인이 형사소추될지도 모르는 리스크를 안은 채 투표장으로 가는 일이 없도록, 검경은 신속한 결론을 내야 한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