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형준 사회부 차장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법무비서관을 역임해 국정철학 이해도가 높고….”
지난달 17일 청와대는 김영식 신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지명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전임 민정수석이 아들의 입사지원서 논란으로 사퇴하자 전임 법무비서관을 9개월 만에 다시 청와대로 부른 것이다.
이를 두고 법원 내부에선 김 민정수석이 대선 전에 청와대가 관리해야 하는 재판이나 2월 법원 정기 인사에 개입하려는 거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판사 출신의 김 민정수석은 2019년 2월 법원을 그만둔 지 석 달 만에 청와대로 갈 당시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김명수 대법원장과 함께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그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만큼 청와대와 대법원 간 가교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김 대법원장은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을 중용하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전임 대법원장 시절에 중용됐던 판사들을 ‘적폐’로 몰아세우면서 법원 내 편 가르기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기존 인사제도에 따라 엘리트 경력을 충실히 밟았던 이들은 상당수가 전임 대법원장 시절 중용됐거나 김 대법원장과 같은 모임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요직에서 배제됐다. 이달 법원 인사에서 대법원 재판연구관 5명과 고법 판사 13명 등 중견 엘리트 판사들이 퇴직을 신청한 것도 이 같은 요인들이 중첩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도 상황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검찰총장이던 2019년 8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시작한 이후 윤 후보와 가까운 검사들은 인사에서 연거푸 물을 먹기 시작했고 친정부 성향 검사들은 잇따라 요직을 차지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 여러 수사를 놓고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결재를 미루면서 윤 총장에게 각을 세운 것도 혼선을 부추겼다.
지난해 4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 인선 기준에 대해 국정철학과의 상관성을 언급해 논란이 됐다.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총장도 코드 인사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고백으로 들렸다.
대통령의 철학과 국정과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인물이 청와대나 정부 부처에 중용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법원과 검찰 등 형사사법기관에는 이를 요구해선 안 된다. 그럴수록 수사와 재판의 공정성이 훼손되고 형사사법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진다는 점을 이번 3·9대선에 출마한 후보들도 잊지 말아야 한다.
황형준 사회부 차장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