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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손잡이 바꿨더니 매출 뛰었다[Monday DBR/김진환]

입력 | 2022-02-14 03:00:00


‘충동 구매’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는 실제로 많은 구매 결정이 매장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소비자 연구에 따르면 매장 안에서 일어나는 구매 결정 비율은 76%에 달한다. 이 때문에 소매점들은 팝업 매장, 할인 행사 등의 프로모션이나 매장과 진열대의 배치 변경 등을 시도해 유동적인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쇼핑 카트가 매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누구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전 세계의 쇼핑 카트 디자인은 큰 차이 없이 대동소이했다.

영국 런던시티대 연구팀은 쇼핑 카트의 디자인이 매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선행 연구를 통해 사용하는 근육이 달라지면 소비자들의 태도, 동기 부여, 주목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파악했다. 가설 검증을 위해 기존의 일반적인 ‘표준형 카트’(가로형 손잡이)와 새로운 형태의 ‘평행형 카트’(평행형 손잡이)를 제작해 실험에 투입했다(그래픽 참조).

표준형 카트는 보통 긴 가로 막대 형태의 손잡이를 밀어서 이동하는데 이때 팔의 펴짐근을 활성화한다. 반면 새로운 카트는 90도로 구부러진 두 개의 평행한 손잡이를 잡도록 설계돼 있는데 이때는 팔의 굴근을 주로 이용한다. 쉽게 말하자면 펴짐근은 삼두박근, 굴근은 이두박근이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펴짐근은 무언가를 멀리할 때 사용되고, 굴근은 몸으로 무언가를 당길 때 주로 사용된다. 따라서 펴짐근은 회피 자극 및 부정적 평가와 연관되고, 굴근은 욕구 자극 및 긍정적 평가와 연관된다.

실험은 실제 소매점에서 진행됐다. 194명의 소비자가 표준형 카트와 새로운 평행형 카트를 각각 이용해 쇼핑했다. 구매가 완료되면 영수증을 통해 전체 구매 수량, 구매 제품 가짓수, 구매액 등을 파악했다. 그 결과 평행형 카트로 쇼핑했을 때 구매량, 가짓수, 구매액 등에서 유의미한 증가가 나타났다. 또 연구자들은 칼로리가 높은 스낵, 달콤한 초콜릿, 술 등을 ‘악한(vice)’ 제품으로, 유기농 식품, 치약과 같은 위생용품, 청소용품 등은 ‘선한(virtue)’ 제품으로 각각 분류하고 카트 이용자 간 구매액 차이를 살펴봤다. 두 제품군 모두 평행형 카트 사용자들의 구매액이 높았다. 다만 밀가루나 쌀, 통조림, 휴지 등 생필품에서는 두 카트 간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평행형 카트에서 구매액이 높은 것이 새로운 디자인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라든가, 혹은 쇼핑 당시의 기분 탓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그러나 디자인의 매력도, 카트 이용의 편안함, 구매자의 기분 등은 쇼핑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평행형 카트 사용으로 이두박근이 자극돼 구매 욕구가 커졌고, 이것이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고 연구팀은 판단했다.

연구팀은 실제로 표준형 카트와 평행형 카트가 서로 다른 근육을 사용하는지도 근전도 검사(EMG) 기법을 이용해 검증했다. 가로형 카트 이외에 세로형(vertical) 손잡이를 가진 카트를 실험에 투입해 총 3종류의 카트를 비교했다. 실험 결과, 가로 형태는 물론이고 세로 형태의 손잡이는 모두 팔 위 부분의 펴짐근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행한 형태의 손잡이만이 굴근을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나 연구진의 가설이 실험으로도 입증됐다.

이번 연구는 지금까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카트 디자인이 실제 매출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혀냈다. 평행형 손잡이가 기존 카트 손잡이 대비 인체공학적으로 불편하고 미는 힘도 기존 카트에 비해 10% 정도 약하다는 한계는 있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향후 쇼핑 카트 제작사는 물론 대형마트 등 소매점의 전략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두박근의 자극이 구매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앞으로 세일즈 마케팅 영역에서 생리학과 인체공학을 접목한 연구가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글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337호(2022년 1월 2호)에 게재된 ‘쇼핑 카트 손잡이 바꿨을 뿐인데 매출이 쑥’ 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김진환 가천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verhoyansky@gachon.ac.kr
정리=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