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작가展 소장품 출품 박주석 교수 겉모습 아니라 내면까지 표현… 렌즈 응시하는 서양기법 거부 얼굴보다 실루엣-정서 보여줘
신낙균(1899∼1955)의 ‘무희 최승희’(1930년). 최승희가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도록 시선을 처리해 새로운 구도를 선보였다. 언주라운드 제공
조선시대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생하게 기록한 ‘승정원일기’를 보면 1713년 숙종의 초상화 명칭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일반인의 얼굴을 그려놓은 것을 ‘사진(寫眞)’, 왕의 초상화를 ‘어진(御眞)’이라 칭한 기록이 나온다.
한국 사진의 역사를 망라한 ‘한국 사진사’를 지난해 11월 출간한 박주석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는 대표적인 ‘사진 컬렉터’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사진(寫眞)이란 단어가 일본어와 한자가 같다 보니 일본으로부터 유래된 말로 알려져 있지만 조선시대에 ‘초상화’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진’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구 언주라운드에서 26일까지 무료로 열리는 전시 ‘사(寫)에서 진(眞)으로’는 1920∼1980년대 한국 사진 역사의 중심에 섰던 사진작가 22명의 작품 50점을 선보인다. 한국인 최초로 개인 사진 전람회를 개최한 정해창,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역인 신낙균 등의 작품이 포함됐다. 작품들은 모두 박 교수와 그가 스승으로 모신 한국 사진사 연구의 개척자 고 최인진 선생의 수집품이다.
정해창의 ‘무제(여인의 초상)’(1929년). 흰 저고리를 입고 흰 두건을 두른 여인은 단아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언주라운드 제공
출품작인 정해창의 ‘무제(여인의 초상)’(1929년)가 대표적이다. 작가는 여인의 얼굴을 강조하기 위해 여인에게 흰색 저고리를 입고 흰 두건을 두르게 했다. 또 모델의 시선은 렌즈와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다. 렌즈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해 대중 스타 이미지를 만드는 서양의 촬영 기법을 거부한 것이다. 박 교수는 “사진에 찍힌 대상은 구체적인 누군가가 아니라 절제된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 자체로 보인다”고 했다. 사진 조명과 포즈에 대한 연구 과정에서 나온 신낙균의 ‘무희 최승희’(1930년), 민충식의 ‘마술사2’(1930년대)도 인물의 얼굴보다는 전체 실루엣과 정서를 보여준다.
전시는 26일 서울 일정을 끝낸 후 3월 광주 갤러리 혜윰, 4월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순회전을 연다. 사진 컬렉션 ‘지평’ 중 28점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뮤지엄(LACMA)에서 올해 9월 열리는 한국 근대미술 특별전에 출품된다. 특별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63점을 포함해 총 140여 점이 전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