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불안 엄존 실패의 경험이라도 진솔하게 공유하길
이승헌 부국장
“대통령은 독특한 자리다. 성공을 위한 청사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조언이 딱히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내 임기를 되돌아본 결과를 전하려 한다.”
2017년 1월 20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며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 한 통을 집무실 책상 서랍에 넣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전통으로 수신자는 그렇게 비난했던 후임 도널드 트럼프였다. 4가지 조언을 했는데 필자는 이 대목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이 자리에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이다(temporary occupants of this office). 이 때문에 법의 원칙과 같은 민주적 제도와 전통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영구 집권하는 게 아니니까 너무 멋대로 하지 말고 지킬 것은 지키라는 것이다. 뻔한 말처럼 들리지만 대통령을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책이나 보고서를 통해서는 알기 어려운 인사이트가 있다.
앞서 조지 H 부시(아버지 부시)는 1993년 1월 당시만 해도 까마득한 애송이였던 빌 클린턴에게 백악관을 넘겨주며 이렇게 편지를 썼다.
대통령의 ‘멘털’이 국정 운영에 중대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역시 ‘선배 대통령’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이었다. 남편 빌을 도와 부시를 상대로 격전을 치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오늘(15일)부터 대선전이 본격 시작되면서 그만큼 문재인 대통령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게 됐다. 다음 달 9일 이후엔 세상의 시선이 온통 당선인에게 쏠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대통령 퇴임 과정을 지켜봤던 만큼, 나름의 정리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중 하나로 앞서 소개한 것처럼 후임자에게 편지를 남기는 게 어떨까 싶다.
어떤 사람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50%를 넘나드는데 문 대통령에게 무슨 국정 운영의 인사이트를 기대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통령 경험자만이 전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이는 정파와 무관한 것이다. 성공담이든 실패담이든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얻은 교훈은 문 대통령이 양산 사저에 싸들고 갈 게 아니라, 차기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참고할 국민적 정치 자산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 거론되는 유력 후보들은 정치 경험이 일천하거나 짧고 중앙 행정 경험이 없다. 코로나19 대응, 북핵 및 미중 정책, 한일 관계 정상화 등 문재인 정부에서 못 푼 복잡다기한 이슈는 고스란히 차기 정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지 후보와 무관하게 차기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안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코로나 사태 초기 백신 수급에 실패한 배경이나 김정은에 대한 술회를 허심탄회하게 전한다면 누가 당선되든 유용한 것이다. 청와대 고위급 인사는 얼마 전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참모들은 조언을 하는 것이고 결국 최종 결정은 대통령 몫이다. 대통령만이 알고 느끼는 시간이란 게 따로 있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