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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이 썼으면 하는 마지막 편지[오늘과 내일/이승헌]

입력 | 2022-02-15 03:00:00

차기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불안 엄존
실패의 경험이라도 진솔하게 공유하길



이승헌 부국장


“대통령은 독특한 자리다. 성공을 위한 청사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조언이 딱히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내 임기를 되돌아본 결과를 전하려 한다.”

2017년 1월 20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며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 한 통을 집무실 책상 서랍에 넣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전통으로 수신자는 그렇게 비난했던 후임 도널드 트럼프였다. 4가지 조언을 했는데 필자는 이 대목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이 자리에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이다(temporary occupants of this office). 이 때문에 법의 원칙과 같은 민주적 제도와 전통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영구 집권하는 게 아니니까 너무 멋대로 하지 말고 지킬 것은 지키라는 것이다. 뻔한 말처럼 들리지만 대통령을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책이나 보고서를 통해서는 알기 어려운 인사이트가 있다.

앞서 조지 H 부시(아버지 부시)는 1993년 1월 당시만 해도 까마득한 애송이였던 빌 클린턴에게 백악관을 넘겨주며 이렇게 편지를 썼다.

“… 매우 힘든 시간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공정하지 않다고 여길지도 모를 비판 때문에 더욱 힘들 것이다. (중략) 그렇다고 비판자들 때문에 낙담하거나 경로에서 이탈하지 말라. 이제 당신의 성공이 곧 우리 이 나라의 성공이다….”

대통령의 ‘멘털’이 국정 운영에 중대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역시 ‘선배 대통령’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이었다. 남편 빌을 도와 부시를 상대로 격전을 치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오늘(15일)부터 대선전이 본격 시작되면서 그만큼 문재인 대통령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게 됐다. 다음 달 9일 이후엔 세상의 시선이 온통 당선인에게 쏠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대통령 퇴임 과정을 지켜봤던 만큼, 나름의 정리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중 하나로 앞서 소개한 것처럼 후임자에게 편지를 남기는 게 어떨까 싶다.

어떤 사람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50%를 넘나드는데 문 대통령에게 무슨 국정 운영의 인사이트를 기대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통령 경험자만이 전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이는 정파와 무관한 것이다. 성공담이든 실패담이든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얻은 교훈은 문 대통령이 양산 사저에 싸들고 갈 게 아니라, 차기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참고할 국민적 정치 자산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 거론되는 유력 후보들은 정치 경험이 일천하거나 짧고 중앙 행정 경험이 없다. 코로나19 대응, 북핵 및 미중 정책, 한일 관계 정상화 등 문재인 정부에서 못 푼 복잡다기한 이슈는 고스란히 차기 정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지 후보와 무관하게 차기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안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코로나 사태 초기 백신 수급에 실패한 배경이나 김정은에 대한 술회를 허심탄회하게 전한다면 누가 당선되든 유용한 것이다. 청와대 고위급 인사는 얼마 전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참모들은 조언을 하는 것이고 결국 최종 결정은 대통령 몫이다. 대통령만이 알고 느끼는 시간이란 게 따로 있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내 소통이 부족했다. 마지막 신년 회견도 취소했다. 이 칼럼을 쓰면서 괜한 부질없는 짓 아닌가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문 대통령이 전임자들과 달리 마지막 편지를 쓴다면 세간의 평가가 조금이나마 달라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