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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라는 가면, 감출 수 없는 불화[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

입력 | 2022-02-15 03:00:00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한복을 입은 인물이 나타난 뒤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2008 베이징 여름올림픽을 앞두고도 한국과 중국은 갈등을 빚었다. 베이징=뉴스1

이원홍 전문기자


2008년 4월. 중국 유학생 5500여 명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무법천지를 연상시키는 폭력시위를 벌였다.

2008 베이징 여름올림픽을 앞두고 성화가 한국을 통과하던 때였다. 당시 성화는 세계의 화합을 염원하는 의미로 여러 나라를 돌았다. 일본과 한국, 북한을 거쳐 8월 개막하는 중국 베이징으로 들어갔다.

국내 인권단체들은 중국의 탈북자 강제 송환과 티베트 인권 탄압이 올림픽 정신에 맞지 않는다며 성화 봉송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에 ‘티베트는 영원한 중국 땅’ 등의 문구를 들고 나타난 중국 유학생들은 180여 명의 한국 시위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중국 유학생들은 돌과 쇠파이프, 벽돌과 물병 등을 던졌고 한국인을 집단 구타했다. 이들을 막으려던 한국 경찰과도 충돌했다. 둔기에 맞아 전경의 머리가 찢어졌다.

이 사건은 한국에서 반중 감정이 확산되는 한 계기가 됐다. 중국 유학생들은 한국이 중국의 실상을 왜곡한다며 흥분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우리나라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의견을 표현하는 현장에 외국인들이 나타나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집단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며 분노했다.

당시 세계를 상대로 몸을 일으키려는 중국이 내세우던 지나친 자국 중심주의가 중국 유학생들의 폭력시위 배경이라는 진단이 있었다. 이에 물든 중국 유학생들이 한국이 주권국가임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감정만 앞세워 제멋대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고구려사 등을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이른바 ‘동북공정’으로 중국이 한국 민족의 주체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도 거론됐다. 왜 한국 정부가 이들의 과격시위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했느냐는 불만과 중국에 대한 저자세 논란이 터져 나왔다.

2022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한창인 지금 모습은 14년 전과 흡사하다. 2008년에는 티베트 인권, 이번에는 신장위구르 지역 인권 탄압 논란 속에 베이징 올림픽의 막이 올랐다. 개막식에 한복이 등장하자 중국이 한복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한다는 논란이 불거졌고 양국 쇼트트랙 팀에 대한 편파 판정 시비로 국민들의 반중 감정이 폭발했다. 동북공정 논란이 다시 일었고 정부의 저자세 외교 논란도 다시 불거졌다. 이번 개막식에 한복이 등장한 것은 조선족이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로 입고 나온 것일 뿐이므로 냉정함을 유지하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의문의 시선을 가진 이들도 많다. 그동안 김치를 비롯해 숱하게 한국 문화 침탈 논란을 일으킨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2008년 당시에도 개회식 식전행사에서 조선족들이 부채춤 등을 추었으나 지금처럼 한국 문화 침탈이라는 거센 논란은 일지 않았다. 이로 비추어 본다면 양 국민의 관계는 14년이 흐르는 동안 더 악화됐다. 이는 중국대사관이 이례적으로 한국 내 반중 감정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데서도 드러난다. 올림픽 기간 동안 한국과 중국 누리꾼들은 인터넷상에서 대란을 벌이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확인된 건 두 나라 국민감정 사이의 깊은 골이다. 뜨거운 올림픽 현장이 빚어낸 일시적 현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번 사태는 중국의 한국 문화 침탈 및 한국에 대한 태도 등 오랜 논쟁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은 이를 폭발시킨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2008년과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논란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것은 중국 중심주의에 대한 우려 및 한국의 주체성 훼손에 대한 반발이다. 양 국민 사이의 감정이 악화될수록 두 나라에 모두 좋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양국이 서로를 존중하며 이 문제를 차분히 해결하고자 한다면 중국은 먼저 한국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중국대사관이 성명을 발표했지만 위압적이고 내정 간섭적인 느낌 때문에 오히려 반감을 사기도 했다. 중국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지 않는다면 ‘함께하는 미래’라는 이번 올림픽 슬로건은 표면적인 구호에 불과하고 중국이 내세운 화합의 올림픽 정신도 한낱 가면으로 느껴질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도 좀 더 주체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찰을 초래하지 않고서도 핵심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양 국민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장기적인 소통과 교류를 진행하는 것은 기본 전제다.



이원홍 전문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