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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 치닫는 우크라 위기… 러, 돈바스 충돌 빌미 침공할 수도[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2-02-15 03:00:00

‘우크라 사태’ 어디로
러 선제공격 가능성 크지 않지만, 美와 해법 못찾으면 침공할 우려
푸틴, 美 경제 제재땐 타격 불가피… 바이든, 중간선거 영향 등 딜레마
강대강 속 출구전략 명분찾기 촉각



13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러시아 접경지역 도네츠크주의 마리우폴에서 여든을 앞둔 여성이 엎드려쏴 자세를 취하며 사격훈련을 받고 있다. 마리우폴=AP 뉴시스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해 말 우크라이나 국경에 러시아군이 집결하자 미국이 러시아의 전쟁 시나리오를 경고했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병력 증강으로 맞받아치며 우크라이나 위기가 불거졌다. 미국은 유럽 주둔 미군 8만여 명의 준비태세를 점검하고 4700명을 추가 파병했다. 러시아는 3만 병력을 우크라이나 북쪽 벨라루스에 파견해 연합군사훈련을 시작하는 등 군사 압박 강도를 높였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 인원 철수 및 전쟁 개시일까지 거론하면서 위기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 측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불가입’ 및 ‘러시아 안보 서면 보장’이라는 러시아 요구를 서방이 수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 다음에는 우크라이나 통제 비용이 더 증가할 것이라는 러시아 우려에 주목한다.

이에 반대하는 측은 전쟁이 일어나면 국내외 여론 악화와 국제적 고립, 대규모 제재에 따른 타격 등 러시아가 너무 큰 비용을 치러야 하며, 무력에 의한 우크라이나 점령과 통제가 러시아가 바라는 유럽 안보질서 조정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주목한다.》






○ 러시아, 침공할 것인가

러시아가 선제공격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은 러시아 주장만큼 큰 군사적 위협이라 보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동쪽, 남쪽, 북쪽 등 3면에 집결한 러시아 무력은 우크라이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과 나토 일방주의를 비판한 러시아 입지를 약화시키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내부에서 반(反)러시아 의식과 부정 여론을 고조시킬 것이며, 오렌지혁명에서 확인했듯 우크라이나에 친러 정권을 수립하더라도 지속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미국이 동유럽 신규 나토 회원국에 전략무기나 미사일방어(MD)체계를 배치한다면 러시아가 반발할 이유가 된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이런 의제와 관련해 서방과 협상할 기회를 날리고 나토 회원국을 결속시키며, 우크라이나의 저항과 군비 강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서방의 파상적 경제제재는 러시아 경제와 국내정치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러시아는 옛소련 붕괴 이후 나토 동진으로 영향력을 잃은 ‘치욕과 상실’을 보상받기 위해 국력을 재건한 뒤 2008년 조지아(옛 그루지야)전쟁과 2014년 크림반도 무력 합병으로 ‘강대국 복귀’를 과시했다. 정치심리학적으로 민족주의적 보상 기제는 어느 정도 채워졌다. 하지만 역사·문화적으로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은 러시아의 강한 거부감을 일으키며 러시아 체제 안정성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나토 동진은 군사·안보적 확장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의 확산을 의미한다. 색깔혁명에 대한 우려는 러시아의 약화와 변환을 기도하는 미국의 음모라는 의식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크라이나를 무력 점령하는 것은 명분도 빈약하고 이익도 크지 않다.

전쟁 가능성을 배제하기도 어렵다. 내부 갈등으로 복잡한 우크라이나 돈바스에서 충돌이 일어나면 조지아전쟁처럼 러시아가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조차 미국이 위기의 판을 키우고 있다고 토로했다. 미국은 이 위기를 활용해 우크라이나에 군비를 지원하고 군사교관을 증파하면서 러시아를 더 자극하고 있다. 나토군의 우크라이나 영토 진입, 흑해 우발 충돌, 돈바스 충돌은 푸틴 대통령이 군사행동을 결심하게 만들 변수가 된다.

○ 가능한 출구전략은…


서구가 러시아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다면 위기 해소는 러시아가 어떤 명분과 출구전략을 찾을 수 있는지에 달렸다. 나토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주요국 정상들은 다양한 중재 노력과 협상 제안을 논의하고 있다. 만족할 만한 답변을 얻지는 못했지만 러시아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은 아니다.

먼저 러시아 안보 우려에 대한 서방 인식과 태도를 변화시켜 협상 테이블에서 러시아와 논의를 시작했고 러시아 요청에 따라 관련 입장을 서면 제출했다. 러시아가 요청해온 러시아 국경 인근 군사 활동 제한에 대한 논의 시작에 전향적 태도를 보인다. 이런 이슈들에 서방이 반응했다는 점은 러시아로서는 큰 성과다. 탈냉전 이후 미국 의도에 따라 ‘협력안보’를 구축한 서방이 러시아와 함께 ‘유럽 안보’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핵심 이슈를 식별하고 적절한 포맷을 찾는 것이다. 첫 번째 이슈는 우크라이나의 지위다. 러시아는 이에 대해 ‘돈바스에서의 무력 사용 중단’과 ‘광범위한 자치권 보장’이라는 답을 2015년 민스크협정에서 이미 제시했다. 우크라이나의 분쟁지역화는 나토 가입에 중요한 결격 사유로 가입 유보 조건이 된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돈바스에서 무력 사용을 포기하지 않고 친러 반군 지역을 탈환해 나토 가입을 가속화하려 했다. 미국은 이를 묵인하고 군사 지원했다.

러시아는 나토 불가입 조치의 서면 보장은 어렵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서방은 나토 가입을 실제적으로 유보하는 조치로서 우크라이나가 민스크협정을 준수하도록 나서야 한다. 러시아와 서방의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도 필요하다. 민스크협정을 도출한 노르망디 형식이 일정 역할을 할 수 있다.

더 큰 이슈는 유럽 안보체제 조정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러시아의 이런 우려에 진정성 있게 대응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유발해 유럽 안보판을 흔들어 11월 미국 중간선거 및 차기 대선에서 나토 해체를 언급했던 도널드 트럼프의 귀환을 위한 환경을 조성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바이든 외교의 주요 시험대인 이유다.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 경쟁이라는 중요한 싸움에 집중하려 했지만 상황은 복잡해졌다. 미중 전략경쟁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러시아의 유럽 안보 관련 문제 제기를 대응,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미-러 양자관계로만 풀기에는 부담이 크다. 나토-러시아위원회를 재활성화해 다뤄야 한다.

서방과의 타협 구조가 구축되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서방과 단절된 ‘러시아 세계’ 구축으로 본격 선회할 확률이 높다. 이는 러시아-벨라루스 국가연합을 축으로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 같은 유사 국가를 아우르고, 탈(脫)소비에트 공간에 러시아 중심 지정학적 공간의 재구축을 본격화하는 것을 뜻한다. 최근 발표된 러시아 국가안보 문건에서 서방과의 협력에 대한 표현이 거의 사라진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전망과 함의


우크라이나 위기는 유럽안보의 새 조정을 위한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전쟁 발발 여부와 상관없이 유럽발(發) 세계질서 재편 논쟁이 본격화할 것이다. 러시아와 미국이 타협 구조를 찾느냐에 따라 미중 전략경쟁과 글로벌 신냉전 전개는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러시아를 관리하면서 중국을 상대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과거 러시아 약화가 나토 동진을 용인했다면 이제는 러시아의 ‘강대국 복귀’를 서방이 어떻게 수용할지 답할 필요가 있다.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