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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급난에… 美중고차값 1년새 41% 폭등 ‘車구하기 전쟁’

입력 | 2022-02-15 03:00:00

수요 꾸준히 느는데 車 공급 막혀 중고차 시간 갈수록 값뛰는 기현상
웃돈 얹어 판매… 신차 가격 추월도
美 ‘40년 만의 최고물가’에 큰 영향



미국 일리노이주 숌버그에 있는 혼다 전문 중고차 매장에 판매용 차량들이 늘어서 있다. 숌버그=AP 뉴시스


2019년 미국 뉴욕에 파견됐다가 곧 한국에 돌아가는 주재원 A 씨는 얼마 전 자신이 타고 다니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지인에게 팔았다. 구입 당시 A 씨는 출고된 지 2년 된 이 차량을 3만500달러(약 3660만 원)에 장만했다. 이를 3년 뒤에 중고로 처분한 가격도 3만 달러(약 3600만 원)로 거의 동일한 수준이었다. 그동안 미국 내에서 중고차 가격이 급등해 A 씨는 미국에서 근무했던 3년간 보험료와 기름값만 부담하면서 차를 굴리는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A 씨는 “시세를 알아보니 3만2000달러 이상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지인에게 파는 것이라 가격을 내렸다”며 “요즘 미국에 새로 부임하는 주재원들은 차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 시간 갈수록 가격 오르는 ‘기현상’


요즘 미국에선 중고차 가격이 치솟으면서 차량 구하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장기화되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공장 가동 중단, 물류대란 등의 요인이 겹쳐 중고차 가격 상승을 초래한 것이다. 지난주 미국 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1월 미국 내 중고차 가격은 전년 대비 40.5% 폭등했다. 중고차는 미국의 1월 전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7.5%로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품목으로 꼽힌다.

가격 상승세가 워낙 가파르다 보니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기현상도 관찰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통상 자동차의 시세는 새 차로 팔린 이후 연식이 더해지면서 계속 하락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같은 연식의 중고차인데도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가격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2020년형 모델 중고차의 경우 평균 판매 가격이 지난해 3월에는 3만4730달러였지만 올 1월에는 4만959달러로 오히려 상승했다고 자동차 시장조사업체인 JD파워는 집계했다. 이 업체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중고차 가격이 차량 판매 첫해 33.3% 급락하고 이후엔 매년 평균 14%씩 하락했지만, 지난해에는 첫해 시세 하락폭이 14.5%에 그쳤고 2∼5년 차 모델은 오히려 가격이 올랐다.

차를 사려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어나는데 공급이 막히면서 중고차 시장에서는 수요자들의 비명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에 부임한 주재원 B 씨는 차량 구입을 위해 중고차 매장을 방문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딜러가 차량 공급이 부족한 상황을 반영해 판매 정가에 더해 1만 달러에 이르는 웃돈을 요구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고차 가격이 신차 가격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추월하는 상황까지 종종 빚어지고 있다.


○ 현지 중고차 딜러 “지금 정상 아니다”


미국 북동부 메인주에서 중고차 거래업체를 운영하는 애덤 리 씨는 WSJ에 “지금 정상이 아닌 상황을 보고 있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3년 전에 2만5000달러였던 차가 지금도 2만5000달러에 거래된다. 전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높은 가격을 주고 울며 겨자 먹기로 중고차를 구입한 사람들은 나중에 이를 처분할 때가 되면 가격 거품이 꺼지면서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자동차업계는 올해 신차 생산량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중고차 가격도 다소 진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부족 등 공급 제약 요인이 언제 정상화될지는 예상하기 힘들다. JD파워의 타이슨 조미니 애널리스트는 “점프를 높이 해서 중력을 잠시 떠날 수는 있지만 결국 중고차 가격도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